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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용 [시간의 결 The Grain of Time] 展

yun jong 2019. 11. 20. 12:19

이일용 [시간의 결 The Grain of Time] 展
2019년 11월 20일(수) - 11월 26일(화)

갤러리 나우

 

 

 

 

 

 

 

시간의 결

진성규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여기 이일용 교수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그는 본래 사진작가도 아니었고 다만 인생의 계기가 있어 어느 날 전공과는 거리가 먼 사진세계로 침잠하여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거기에는 젊은 날의 염원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솔한 그의 사진들이 우리의 시선을 붙들어놓고 있다.
필자 자신은 사진에 대해 무지하다. 오랫동안 전국의 문화유산을 찾아 적당히 사진을 찍었을 뿐 특별한 사진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고, 사진 기법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추천사를 작성하게 된 것은 역사 전공자라는 점에서 작가의 요구에 응하게 된 것이니 독자들의 양해를 바랄 뿐이다.
이번 전시회 사진은 조선시대 창덕궁과 후원, 종묘사진들이다. 창덕궁(昌德宮) 사진은 일제 강점기 때 찍은 사진과 최근의 사진을 합성한 것이고, 후원(後苑) 사진은 여러 사진을 겹쳐 모자이크한 것으로 사진의 기법 상 특이한 면이 있다. 게다가 동궐도에 창덕궁과 후원의 현판을 담은 것은 작가의 착상이니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묘(宗廟)의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 사진에 어진들을 담았다. 뿐만 아니라 공신들의 전신상까지 합성하여 궁궐의 중층성까지 담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결국 이번 사진전은 5대 궁궐 중 가장 잘 남아있는 창덕궁과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 사진을 담았으니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천겁을 지나도 옛날이 아니고, 만세를 걸쳐도 언제나 지금(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이라는 불교의 말이 새삼스럽다.

이제 창덕궁, 후원, 종묘로 역사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창덕궁은 1405년(태종 5년) 건립된 왕궁이다. 처음에는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 행궁으로도 불리는데, 왕이 거둥할 때 머무르던 별궁)으로 세워졌지만 이후 임금들이 주로 창덕궁에 머물면서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한 셈이다. 태종이 경복궁을 두고도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 창덕궁을 세운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이복동생을 죽이고 정적 정도전까지 죽인 후 왕위에 오른 태종으로서는 피의 숙청의 현장인 경복궁을 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창덕궁의 전각을 대충 분류하면 왕과 왕비의 공간, 왕자의 공간, 신료들의 공간으로 대별된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은 왕의 즉위식이나 신하들의 하례, 외국사신을 접견하는 장소이고, 선정전(宣政殿)은 왕의 집무실이고, 대조전(大造殿)은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특히 대조전 옆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경술국치의 뼈아픈 역사현장이기도 하다. 왕자의 공간으로 성정각(誠正閣)이 있고, 왕을 가까이 보좌하기 위해 궁궐에 세운 궐내각사(闕內各司)가 있다. 그 외 역대 왕실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璿源殿)과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던 낙선재(樂善齋)가 그대로 남아 있다.
창덕궁은 경복궁과는 달리 주변 자연환경에 맞춰 건립되면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호평을 받으면서 다른 궁궐의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시대는 궁의 동쪽에 세워진 창경궁(昌慶宮)과 경계 없이 사용하여 두 궁궐을 ‘동궐’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동궐도(東闕圖)는 동궐이 가장 전성했던 당시의 그림으로 복원에 결정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창덕궁은 1997년 후원(後苑)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궁궐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후원은 창덕궁의 정원으로 일명 북원(北苑)• 금원(禁苑) 등으로도 부른다. 비원(秘苑)이란 명칭도 보이지만, 후원으로 가장 많이 부르고 있는 것 같다. 후원은 태종이 창덕궁을 조성할 당시부터 조성되면서 왕궁의 사랑을 독차지하였고,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황폐화 되자 광해군 때 창덕궁과 함께 재건되기 시작하였다. 인조, 숙종, 정조, 순조 등 여러 왕을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후원은 북악산 한 줄기인 응봉(鷹峯)을 등지고 자연지형을 적당히 활용하여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정자를 만들어 절묘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후원에는 크게 네 개의 골짜기가 있는데 부용지(芙蓉池)• 애련지(愛蓮池)• 관람지(觀纜池)• 옥류천(玉流川) 영역이 그것이다. 후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인공적인 것에서 자연적인 것으로, 개방된 곳에서 깊숙한 숲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잎이 돋기 시작하는 초봄에 후원으로 들어가 보라. 자신이 숲이고 숲이 내 자신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후원 서쪽 깊숙한 곳은 출입금지로 막혀있지만 서글픈 대보단이 있고, 제사공간인 선원전도 자리 잡고 있다.
후원은 왕실의 전용 휴식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연풍광을 즐기면서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때로는 과거시험 장소로, 종친을 모시고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군사 훈련과 활 쏘는 장소 등으로도 활용되었으며 여유 있고, 넉넉함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정원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종묘(宗廟)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들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국가의 최고 사당이다. 종묘는 태조가 1395년 한양을 수도로 정하면서 짓게 되었지만, 현재의 종묘는 임진왜란 후 1608년에 중건한 것이다. 그러나 모실 신주가 계속 늘어나면서 수차례 건물 규모를 늘려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현재 종묘는 정전과 영녕전을 합쳐 종묘라 부르지만,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정전만을 종묘라 불렀다. 정전의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서쪽을 상으로 해서 모셨다. 영녕전은 정전에서 조천(祧遷)된 34위의 신주를 16칸에 소목제도(昭穆制度: 신주를 모시는 차례로 왼쪽을 昭, 오른쪽을 穆이라 함)에 따라 모셨다. 조선시대는 종묘사직이라 하여 종묘를 짓고 사직단을 세워 제사지내는 것을 가장 으뜸으로 여겼던 것이다. 중국의 주례(周禮)에 따라 경복궁을 가운데 두고 동쪽에 종묘(宗廟)를 서쪽에 사직(社稷)을 모셨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백(魂魄)으로 분리되어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으로 되돌아간다고 보았다. 혼을 모시는 공간이 사당이고 백을 모시는 공간이 무덤인 것이다. 결국 종묘는 왕과 왕비의 혼을 모시는 공간인 셈이다. 따라서 조선사회에 있어 종묘는 왕권의 상징이자 왕권을 공고화시키는 기능도 담당했던 것이다.
종묘의 구성을 보면 제사를 모시는 공간과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사를 모시는 공간으로 정전, 영녕전, 공신당, 칠사당이 있고, 제사 준비공간으로는 제궁, 향대청, 악공청, 전사청 등이 있다. 종묘는 사자의 공간이므로 건물의 장식과 기교를 절제하여 단조로워 보이지만 존엄과 신성한 분위기가 의도적으로 연출된 건물이다. 게다가 종묘에는 제례와 제례악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시간의 결’이란 주제의 사진집을 발간하고 전시회를 준비하는 작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하면서 사진 예술을 통해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만끽하길 바라며, 계속된 사진작업으로 작가의 꿈이 실현되어 후속 사진집의 발간과 전시회가 개최되는 날 다시 만날 수 있길 고대한다.

 

 

 

 

 

 

개인전
2019 시간의 결, 갤러리 나우, 서울

단체전
2018 국립중앙박물관 봄나들이 사진공모전,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2016 중앙대학교 사진아카데미 세미나반 수료전(알파고의 실수), 갤러리 라메르, 서울
한강몽땅여름축제 사진전, 서울시청 1층, 서울
서울사진축제 시민사진공모전, 서울혁신파크 내 SeMA창고, 서울
역사도시 서울, 공간 291, 서울
2015 중앙대학교 사진아카데미 작품연구반 수료전,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서울사진축제 국제사진공모전, 서울시청, 서울
종묘사진공모전 수상작 전시, 종묘, 서울
중앙대학교 사진아카데미 창작반 수료전, 동덕아트갤러리,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