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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희 Lee Sun-Hee [부재(不在)의 풍경을 읽다] 展

yun jong 2019. 8. 22. 08:53

이순희 Lee Sun-Hee [부재(不在)의 풍경을 읽다] 展
2019년 08월 21일(수) - 09월 03일(화)

갤러리 나우

 

 

 

 

 

 

 

 

 

 

부재(不在)의 풍경을 읽다

손영실 (경일대 교수, 이미지 비평가)

이순희는 경주의 문화유적들을 대상으로 생명력을 가진 도시의 역사와 기억을 자전적 시각을 통해 사진에 담아낸다.
21세기 경주는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많은 변모를 거쳤음에도, 도시 전체는 경주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천 년 전 신라 유적들과 공존하고 있다. 경주의 곳곳에 흩어진 유적들을 촬영한 이 사진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애써 찾아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곳에 위치한 것들을 보여준다.
작가의 첫 사진적 대상은 계림이다. 계림의 나무들은 사람의 모습과 닮은 독특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나무 형상을 통해 감지되는 미묘한 분위기나 신령스러움을 작가는 만물에 깃든‘영’으로 간주했다. 그리하여 움직이는 기의 형상인‘영’은 구체적인 사물도 아니며 형태도 없지만, 존재의 본질로 파악되었다. 작가는 범신론적 관점을 채택하여 계림을 영적 에너지가 깃들여 있고 신비로운 깨달음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로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며 나무들을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로 표현하고자 했다.
두 번째 대상인 당산나무는 마을 입구에 심어져 있고 공동체를 보살펴줄 신령이 살고 있다고 여겨져 신성시되는 영물이다. 경주에 남겨진, 오랜 수령의 당산 나무는 이른 봄, 싹을 틔우기 위해 수액을 가지 끝까지 채워 올린다. 작가는 생명력이 절정에 다다른 이 시기, 밤의 어둠 속에 나무의 신령스러운 양상을 표현하였다.
세 번째 대상은 경주의 잊혀져간 유물들이다. 황룡사, 보문사, 망덕사 등과 같은 경주 전역에 분포한 폐사지에 남겨진 석물, 기단석, 석등과 경주 남산의 불탑과 부서진 불상, 모전 석탑지의 돌기둥은 역사의 광풍을 견디며 영욕의 시간을 거친, 찬란한 빛이 사라진 채, 응축된 시간과 기억을 담고 있다. 부재 속 고독감을 극대화 하고자 초록이 무성한 여름날, 빛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기 전인 밤과 새벽 시간대에 촬영되었다. 이 사진들은 들판의 뚫려진 텅 빈 공간에 스트로보 조명을 써서 온전히 피사체에 집중하고 마주하게 한다. 소유할 수 없는 시공간, 그녀가 머문 곳과 그 시간이 곧 삶이 자리한 곳임이 느껴진다. 촬영된 유물들은 삶의 편린(片鱗)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부식되고 마모된 유물의 소멸에 관한 불안감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자신이 머문 시간과 공간에 삶의 숨결,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유적지는 사라진 구조물에 관한 은유를 품은 채, 경험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특징짓고 실제 경험이 어떻게 장소라는 감각에 고정되는지를 바라보게 한다.
장소에 관한 사진적 재현은 공간에 관한 신체적 감성을 일으키고 상상의 도약을 가능하게 하며 역사의 어떤 순간으로 이동하는 시간 여행자로서의 특권을 부여한다. 현재는 시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며 낯선 조우를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이 시간은 과거와 현재를 품은 일종의‘사이-공간’에 놓여진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의 시간론에 따르면 응축된 순간들은 체험되는 현재를 구성하며 그 현재는 다가올 미래로 가게 하는 시간적 계기의 중심이다. 의식에 드러나지 않는, 각각의 독립된 순간들의 개별적 감각과 무의식의 층위가 있음을 의미한다.
작가는 경주에 천 년 간 존재해온 문화유적들을 매개로 물리적 장소에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감성 형식을 경험하고 재현하는 방식을 통해 존재를 자각하는 낯선 감정을 마주하게 하며 역사의 숨결과 시간의 기억을 담아 개념화되기 이전의 감각 경험에 기반한, 현재의 자아를 사유하게 하는 풍경으로 제시한다.

 

 

 

 

 

 

 

정령의 숲
‘정령의 숲’은 본인이 살고 있는 역사도시 ‘경주’를 촬영한 사진이다. 신라 천년의 시간과 김알지의 탄생 신화를 간직한 역사적 공간 계림의 나무는 경주의 많은 문화유적지들과 신라의 땅을 지키고 있다. 계림의 나무들은 마치 사람과 닮은 듯 한 모습에서 나무에도 영혼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리 지어 있지만, 홀로 자라는 나무들은 나름의 정령(만물에 깃들어 있는 신령한 기운)을 갖고 있었다. 이 나무들은 시간의 변화를 느끼며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 팔을 뻗어 하늘을 이고 지하로 뿌리를 내려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러한 계림의 나무들에서 신라 고유의 에너지와 분위기를 느꼈다. 그저 평범한 햇살 아래에서도 나무들은 거대한 뿌리를 드러내며,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이들과 조용히 마주서면 세상엔 이들과 나만이 존재한다. 이들의 독특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어 인적이 없는 이른 새벽이나 해질녘을 선택하고 인공조명을 사용하여 주변의 배경을 어둡게 하고, 나무의 형태가 잘 드러나는 계절에 촬영하였다.
동양에서는 영혼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도 있어서 사람들처럼 살아간다고 믿었다. 이런 동양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계림의 오래된 나무가 지니고 있는 신비로움과 조형성을 보이지 않는 기의 움직임인 ‘영’이라는 형상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인간이 가진 오관(五官)으로는 볼 수 없는 ‘영’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보편적 감각기관인 내적 감각기관을 이용하여 ‘영’을 시각화시켰다. 인간의 내적 감각기관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기의 형상인 ‘영’은 사물의 내면에 존재한다.
무릇 사물이란 보이지 않는 기에 의해서 끊임없이 생성, 변화, 소멸하는 순환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형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존재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형상을 지닌 사물로서 나타난다. 사물의 형체와 외견을 통해 나타나는 분위기나 신령스러움은 보일 듯 보이지 않고 들릴 듯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움직이는 기의 형상인 ‘영’은 구체적인 사물도 아니며 형태도 없지만, 존재의 본질이며 정신이다.
보이지 않는 기의 흐름에 따라 그 외형을 달리하는 사물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당산나무
당산나무의 내력은 단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은 하늘에서 신단수라는 성스러운 나무를 타고 태백산(백두산) 꼭대기에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게 신이 타고 내린다고 믿은 나무가 바로 당산나무이다. 고조선 사람들은 당산나무(신단수) 아래에서 제를 올리며, 그들의 공동체를 보살펴줄 신령이 내리기를 빌었던 것이다.
정령의 숲(계림)을 촬영하며 나무의 수종을 조사 하던 중 계림의 묘목 수종들이 회화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 ‘박달나무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정령의 숲의 이미지에서 당산나무로 소재를 옮기게 되었다. 당산나무는 박달나무과로 마을 입구에 심어져 있다.
2015년 2월 어느 날 해를 등지며 서 있는 오랜 수령의 나무를 보게 되었다. 나무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 가지 끝 마다 물이 올라 있었다. 꽃을 피울 수 없지만, 이른 봄 싹을 틔우기 위해 수액을 가지 끝까지 올린 나무. 본인에게는 꽃이 피었다. 꽃이 핀 나무의 영혼을 표현하고자 오랜 수령의 당산나무를 소재로 선택하였다. 당산나무의 생명력과 존재감, 그리고 신령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이른 봄의 시간과 밤을 선택하였다.
무릇 사물이란 보이지 않는 기에 의해서 끊임없이 생성, 변화, 소멸하는 순환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형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존재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형상을 지닌 사물로서 나타난다. 사물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사물의 본질인 기는 있는 듯 없는 듯 하여, 보일 듯 보이지 않고 드릴 듯 들리지 않는다. 사물의 형체와 외견을 통해 나타나는 분위기나 신령스러움은 인간이 가진 오관으로는 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기는 구체적인 사물도 아니며 형태도 없지만, 존재의 본질이며, 정신이다.
나의 사진 세계는 비 물질 세계의 보이지 않는 기의 움직임을 표현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기의 흐름에 따라 그 외형을 달리하는 사물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경주, 천 년의 그들
본인이 사물을 바라보는 동양의 우주관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동양에서는 영혼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도 있어서 사람들처럼 살아간다고 믿었다. 사진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 현실의 재현 이라는 상황 속에서 사물의 보이는 것의 너머 보이지 않는 존재를 촬영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