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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ways of seeing

yun jong 2018. 7. 17. 16:56






  

∎ 전 시 제 목 : New ways of seeing                   

                

∎ 전 시 작 가 : 김진현, 노춘호, 박세진, 히유미       

           

∎ 전 시 일 정 : 2018년 7월 19일(목) ~ 7월 24일(화)


∎ 전 시 장 소 : 반도카메라 갤러리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되기 까지는 특정한 사건, 오브제에 대해 사진으로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사진으로 기록한다.

사진은 사진가의 선택의 대한 결과물이다. 모든 사건의 내용을 사진으로 기록되었다면 각각의 사진들은 의미 없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사진은 그 당시 사진가가 중요하고 판단한 하나의 메시지이다.

사진의 메시지는 빛, 기계(카메라) 그리고 사진가의 순간적인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사진은 시간의 연속성에 떨어져 나온 하나의 순간을 따로 떼어내어 보전하고 제시한다.

사진가는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을 찾고 시간을 선택한다. 시간의 선택에 따라서 자신에게 적합한 의미를 찾는다.

시간의 일부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따라 사진가만의 독창적인 메시지를 보여준다.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도 사진으로 기록이 되며 사진은 진실과 거짓이 서로 공존하는 관계를 가진다.

진실의 메시지를 담고 있을 때 사진은 진정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 진실은 인물의 표정, 행동, 대상의 위치, 형태 등 다양하게 발견된다.

진실을 보이는 하는 중요한 것은 바로 사진가의 시간의 선택인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은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진은 사진으로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사건, 같은 오브제로도 시간의 선택에 따라 메시지는 다르게 결정이 된다.




<김진현 – 표피> 

일상 속 다양한 사람을 마주한다. 그 중 대게는 서로의 필요에 의한 것이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다.

내가 상대에게 그러하듯, 상대도 나에게 보이기 원하는 모습만 보여주지만 말 몇 마디, 술 한두 잔에 서로를 완전히 파악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사진을 찍을 때는 더욱 심각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생면부지였던 대상을 향해 간단한 계산과 감에 의해 셔터를 눌렀을 뿐이지만

마치 그를 온전히 다 알아버린 기분이 든다. 때론 영혼까지 포착한 것처럼 느껴지는 사진이 찍히기도 하지만 교감이라고는 눈빛교환과 간단한 대화가 전부인 경우도 있다.

물론 관계를 맺는 사람 모두의 본성을 파악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는 일이다. 사진을 찍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찍히는 이의 모습을 정확하게 담지 않음은 대상에 대한 내 무지의 솔직한 고백이며, 역설적으로 본질에 가까워지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노춘호 - 부산 ‘風'>

부산에서 태어나 20년간 자랐지만 그 두 배 이상을 서울에 살아 온 나 .

간간이 부산에 가면 추억과 함께 부산만이 갖고 있는 무언가를 강하게 느끼게 된다.

일본과 가까운 항구라는 역사와 바다와 산이 맞닿아있어 좁게 길게 된 그 사이의 공간, 그래서 산에 형성되는 삶의 터전 등의 지형적인 특징 속에서

일본 강점기의 흔적, 해방 귀국 선 타고 온 이들의 흔적, 한국전쟁 때 온 피난민들의 흔적,

경제 개발과 더불어 한국 제2의 도시로 바다가 있다는 것과 가까운 일본 문화에 민감해지는 특징 등이 혼재 된 독특한 부산(‘風)이 만들어진 것 같다.

비록 과거의 물질적 흔적은 점점 엷어지고 있지만 내가 갖고 있는 추억과 느낌으로 부산 ‘風'의 감성을 내가 자란 부산 국제시장을 중심으로 담아보았다.




<박세진 - 본인인증>

책장 깊숙한 곳의 앨범 속 빛바랜 사진에는 어린 시절 나와 가족들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기념일 혹은 특별히 기억되어야 하는 순간들이 한 장의 조각처럼 남겨져 있다.

눈을 감은 사진이나 내 스스로 인지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사진으로 남겨졌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던 시대에 촬영된 사진 대부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사진 남기기 모습은 예전과 다르다. 일 년에 한두 번 특별한 날에 찍었던 사진들은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이미지는 나의 책장이 아닌

sns공간에 실시간으로 공유 된다. 그리고 더 이상 타인이 아닌 내 스스로 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미지 안에서의 나와 공간은, 자신의 시선을 중심으로 철저히 의도되며 선택되어진다.

내가 의도한 단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기 위한 과정 속에 선택되지 못한 나의 모습들은 ‘이미지 홍수의 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잊혀져가며 결국 버려지게 된다.

선택된 이미지는 나를 소통하는 이미지로 대변 되지만, 과연 그 이미지가 나를 정의하는데 본질적으로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는 의문점을 갖게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리모컨을 이용하여 자기 스스로 연출하고, 촬영 장소는 자신의 방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촬영한다. 사각배경은 sns공간을 의미하며

그 공간은 현실의 공간과 공존한다. sns공간 앞 모델들은 현실공간을 뒤로한 채 가상의 공간에서 보여 질 자신의 이미지를 생산하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히유미 - Reflect reality>

 복제는 원본이 없으면 생산이 되지 않으며 복제와 원본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기술적인 이미지인 사진의 등장으로 이러한 차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사진은 원본의 유사성에 대해서 묻지 않아도 되는 변화를 만들었다.

사진은 최대한 원본과 비슷하게 복제하기 때문에 원본의 특징을 잘 재현하려고 한다.

또한 대상을 모방하고 현실을 재현하려고 하는 대상과 무관하게 이미지를 무한정하게 생산을 한다.  

생산된 이미지는 실재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며 디지털 매체 시대의 이미지는 전통적인 이미지들과 다르게 자신을 드러낸다.

실재와 가상, 가상과 실재는 이러한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실재를 통해 생산된 이미지들은 실재를 감추거나 은폐, 변화시키고 실재와 관련이 없는 이미지들을 생산하기도 한다.

때로는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이미지를 만든다. 이제 더 이상 실재와 이미지의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내가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일 것이다. 보고 있는 실재가 과연 실재인가?

사진의 행위는 표현의 행위이지만 사진의 모습은 재현의 모습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반복하여 존재하는 것이 때문에 사진은 재현Presentatiion과 동시 가상이다.

세계를 현실을 실재를 완벽히 닮았을 뿐 실재 그 차체는 아니다. 사진처럼 진실과 허구를 동시에 바라보게 하는 매체는 없다.

만약 현실이 거짓이라면 눈앞에 있는 피사체가 모조, 위조, 가공된 것이라면 이것은 찍은 사진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