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및 소개 글

조정숙 [ The Time of Father ]展

yun jong 2015. 7. 16. 09:23

조정숙 [ The Time of Father ]展
2015년 7월 15일(수) - 7월 21일(화)

갤러리 나우

 

 

 

 

 

 

 

 

 

 

 

 

The Time of Farther
아버지의 시간

늘 건강하시리라 믿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2014년 2월의 일이었다. 사진을 한다는 딸로서 사진 한 장을 제대로 찍어드리지 못한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과 어쩌면 영영 떠나가실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를 사진 찍게 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마치 내게 사진을 찍을 기회를 주시려는 듯이 기적처럼 깨어 나셨지만 더는 일어서실 수가 없었다. 그 날 이후 한 달에 한두 번 목욕을 시켜드리러 가는 날에 아버지를 사진에 담고 있다. 아버지는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며 삶에 강한 의지를 보이셨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남았음을 나는 알았다. 쓰러지신 그날처럼 또 한 번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아버지의 모든 흔적을 차근차근 담아냈다.
아버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슬픔은 췌장암으로 5년 전에 돌아가신 오빠의 죽음이었다. 하루는 홀로 집을 지키시던 아버지가 술 한잔 하시고는 내게 전화를 하셨다. 한참을 말이 없어서 장난 전화인 줄 알고 끊으려던 순간 수화기에서 들려오던 흐느낌. 가장으로써 아내에게도 보이지 못했던, 남편을 잃은 며느리와 아버지를 잃은 손주들 앞에도 차마 내보일 수 없었던 아버지의 흐느낌, 그날 나는 난생처음 가슴 먹먹해 오는 아버지의 숨죽인 오열을 눈물을 삼키며 들어야 했다.
1년을 누워 지내시면서 아버지의 몸은 점차 굳어져서 혼자서는 다리 한쪽을 드는 것조차 힘들어졌고, 이제는 덜 굳은 오른팔을 흔드는 것과 발가락을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아버지가 움직일 수 있는 전부다. 아버지의 몸은 서서히 화석처럼 굳어만 간다. 치매 또한 점점 심해져서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 때가 많아졌다.
이렇듯 지금은 치매라는 병증 때문에 아버지의 모든 것들이 그 모습 이면에 다 감춰져 있지만, 아버지의 몸을 통해서 아버지의 시간을 나는 바라본다. 아버지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잡아두고 싶다. 아버지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준비 없이 다가온 죽음이란 그늘에 영원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이란 얼마나 짧은 것인지. 죽음 이후 소멸할 육신을 흔쾌히 내어준 아버지의 사랑에 나는 다시 한 번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를 낮은 소리로 셔터에 실어 눈물의 무게로 누른다.

조정숙

[ 평론 글 ]

아버지 , 몸 , 회귀


박윤배 (시인)


사진작가 조정숙은 실존의 상상력이 예리한 작가다. 시각적 예리함을 넘어서 그는 인간이 지닌 공통적 고뇌를 사진영상을 통해 보여준다. 그를 사진작가라고 부르기 이전에 시인임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것은 함축적인 이미지를 구사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에 내게 들고 온 포트폴리오 속의 영상들은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조정숙의 사진과는 표현 대상이 달랐다. 언급하면 전에는 식물의 이미지에 아우라를 보탬으로 아련함의 바탕에서 생명의 치열함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인체를 통해 회귀하는 한생의 소멸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사진 속의 인체는 결국 나를 만든 근원의 아버지이다. 아버지에 대해서 엄청난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그는 다 말하지 않는다. 동작 하나하나와 늙어 패인 살의 고랑 속을 말없는 응시를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는 시각이라는 오감의 하나에만 국한하진 않는다. 사진 속에 있는 인체인 아버지는 아름다운 살갗을 넘어선 연륜의 살갗임을 그는 포착해내고 있으며, 촉감과 후각까지도 표현해낸다.
치매에 든 아버지이다. 연로한 아버지이다. 그런 아버지의 한 순간을 꼭 붙들고 싶은 것이 그의 심정일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든 그의 애타는 심정은 이 사진을 보는 이로 하여금 엄청난 공감을 일으킨다. 그러나 안타까움만이 아닌 어쩔 수 없이 건너가는 한 생의 구간임에 그는 아버지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동작들을 고스란히 포착해 낸다. 이러한 그의 예리한 눈은 한때 시를 공부하러 나를 찾아왔던 어떤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에 그가 세상에 내어놓은 사진들은 실존의 상상력에 보태어진 것이 있다면 그건 절실함이다. 치매라는 증상이 그러하듯 아버지는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아버지이다. 오래된 숲 속에 들었을 때 종종 만나게 되는 수명 다한 나무와 풀이 넘어져 또 다른 곤충들을 품는 한 과정이 허물어지는 아버지의 살갗을 통해 보인다.
아마도 조정숙이 넉넉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눈물방울로 셔터를 누를 수 있었던 것도 몸 속에 들어 있는 회귀하는 인간의 모습을 깨달음의 사유로 읽었기 때문이리라.
울림이 깊고 넓다. 조정숙은 끊임없이 발전적 변신을 하는 작가이기에 다음이, 그 다음이 늘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