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潤宗 의 橫說竪說

인물사진(Portrait)에 대한 소고

yun jong 2020. 4. 18. 10:50

 

 

 

                                                             [ 진주 중앙시장 사람들]

 

                                  인물사진(Portrait)에 대한 소고

 

어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국사진작가협회 홈페이지의 인물사진코너에 올려 진 필자의 사진이 도촬이라고 폄하하고 사진작가로서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 것이었다.

그간 30여년을 필자 나름의 인물사진창작에만 몰두하고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는 여유도 없이 살아온 필자를 오늘에 발견하게 되었고, 그 계기로 필자의 작품 활동에 대하여 자평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사진작가로서의 입문절차를 마치고, 본인에 가장 적합한 사진 장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당시 리얼리즘 사진의 대가 최민식 선생의 명성 및 집필활동과 사진적 신념에 매료되어 선생과 함께하는 인물사진에 심취하게 되었다.

 

인물사진이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인간의 얼굴이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은 다종다양하며 이중에서 많은 것이 민중에 의하여 만들어 진다. 기념사진, 기록사진 중에서 인간을 주제로 인간상을 추구하려는 명확한 창작의식을 생각해야 한다. 그중에서 우연성에 중점을 둔 스냅쇼트 사진, 성격과 심리적인 것을 묘사하려는 포트레이트, 희비애락의 인간의 얼굴을 찍은 사진, 즉 상황을 기록적, 보도적으로 전하는 인물사진이 있다. 그리고 인물을 제2의적(2義的)으로 취급하며 선, , 톤의 밸런스를 잡은 상업사진으로서의 포트레이트, 얼굴을 소재로 한 쇼킹한 표상적 조형적 인물사진 등 그 종류와 단계는 매우 많다.” [최민식 저, 포트레이트 연구중에서]

 

필자의 작품을 분류해보면 희비애락의 인간모습에 시대적 환경과 시장을 형성하는 구성인들을 중심한 작품활동 이다 보니 기록적, 보도적 성격이 매우 진하다.

최민식 선생은 자갈치시장을 주 활동무대로 하면서 초창기엔 망원렌즈를 많이 이용해 작품화 하였다.

필자 역시 삼천포 판장사진을 작업하면서 갯가의 강한 억양과 욕설에 위축되어 180망원 단렌즈로 작업을 하였지만(10m 이내) 희한하게도 손님을 맞으면서 카메라를 의식하는 판장사람들의 예리한 눈길을 피하지 못하고 쌍소리를 많이 들었다.

매번 반복되는 촬영과 자주 보게 되는 사진쟁이와의 상면으로 서서히 경계심을 풀고 재미있는 입담들이 오고가며 세월이 약이라고 곧 긴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었다.(아침을 여는 사람들의 표정 사진전 )

 

진주 중앙시장의 작업을 시작하면서 무언가 아쉬운 망원렌즈의 단점을 보완하기위하여 광각렌즈의 사용을 결심한다.

가까움에 느끼는 온기와 빠른 친화를 위해선 거북하지만 밀착촬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맞을 매라면 하루라도 빨리 맞고 사람 사는 온기를 같이 호흡하고 느낄 수 있어야만 제대로 된 인물사진이 나올 수 있기에...

그기에 내밀한 삶의 표정, 복장문화에 관한 자료, 각종의 선전문구와 주변 환경이 보여주는 시대상을 한 작품속에 다 담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30여년에 걸친 사진작업으로 시장사람들과는 자식이나 친구가 되었으며 그 속에서 그 분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고, 열악한 여건에 도전하는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에서 찐한 삶의 의미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흠뻑 느끼며 필자 스스로의 나태함을 그 분들이 채찍질 하여 여기까지 함께 하였다.

 

필자가 사용하는 장비는 캐논EOS 5D Mark에 어댑터를 사용 라이카 35~70줌랜즈를 결합 RAW파일로 완전한 수동으로 작업을 한다.

왜 이 장비를 소개 하느냐면 어느 비평가의 도촬이라는 설명과 사진가로서의 양심을 저버렸다는 그 비판에 대하여 해명을 하고 져 함이다.

장비를 사용해 보신 분은 상당한 무게와 부피를 충분이 이해하실 줄 안다.

이런 구닥다리 장비로 그것도 수동으로 도촬을 한다고...

잠시 공모전용이나 얻고 져 다녀가는 사진 입문가인가 ...

필자는 사계절 변함없이 수십년을 그들과 함께하였으며 오래전 그분들을 피사체로 한 작품을 한사협 단위지부 합동전에 전시하고 나서 그 분들에게 작품을 선사하는 기회도 가졌다.

무어가 무섭고 아쉬워 도촬을 하는가?

다만 카메라를 의식한 인물사진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그 분들의 순수한 모습 그대로를 담고 져 함일 뿐이다.

 

초상권문제에 대하여는 돌아가신 최민식 선생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선생이 부산의 사진후배에게 김선생! 난 요즘 사진작품 만들 것이 없어요. 초상권 때문에...

그 후로는 외국으로 다니시며 창작활동을 하시다 작고하셨다.

필자는 수천점의 중앙시장 사람들, 작품을 상업용이나 공모전이나 광고선전용 어디에도 사용치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분들의 고귀한 땀의 결정체를 나의 명예나 금전적 소득에 유혹되어 우를 범하는 그런 몰염치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기록으로서의 가치와 그 순수성을 인정받는 그날까지.

 

지난날 절친한 사우가 필자의 작품을 최민식 공모전에 출품을 권유하였다.

곧 그것은 금전적 보상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지만 필자는 마음만 받고 출품을 사양하였다.

 

역사적 장소나, 사건의 현장, 찐한 삶의 열기가 느껴지는 재래시장이나 등등은 가식적이지 않으며 미화와 꾸밈이 없는 사실적 묘사이어야 한다.

그것이 곧 증거이며 역사의 기록이다.

 

글을 마치며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 할까 한다.

10년이 훨씬 지난 일일 것이다.

순천 낙암민속마을을 사우들과 함께 ...

마을 앞 좌판에 약간의 단감과 무화과를 올려놓고 판매하는 노모를 발견하고 인물사진을 좋아하는 필자는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어, 노모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드렸다.

노모, 갑작스레 손가락으로 원을... 흐흐 직감으로 돈을 요구함을 알고 배추 잎 한 장을 드렸다.

받아든 노모 이걸 잘 챙겨 넣곤 모든 일행에게 딱 셋 판밖에 안된 다고 다짐을 받는다.

참 까다로운 프로모델이다.

진짜 셋 판 외에는 허락지 않아 사우들이 좌판의 무화과를 추가로 구매하고서야 촬영의 협조를 얻었다.

시골인심도 옛날스럽지 않아 쓴 미소가 났다.

 

이 경우 당시 만든 작품으로 공모전에 입상하여 상당한 상금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노모의 자식은 수상자에게 상금 분배를 요청하였으나 거절 당하고   초상권 문제를 제기했다고 하는 가설을 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무척 궁금하다.

 

2020417일 코로나 바이러스 거리 두기를 하면서  

 

 

                                             [낙암민속마을의 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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