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바라보고 재현하는 것의 미학적인 의미 김영태 / 사진문화비평, 현대사진포럼대표
우리가 어떠한 사물, 사람, 사건, 상황 등을 바라보는 것은 그에 대한 관심의 표명이다. 또한 바라보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행위 즉 -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것은 - 어떠한 사물(상황)에 애정을 갖고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중에서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發現일 수도 있다. 인류가 사진술을 발명한 것은 좀 더 쉽게 짧은 시간에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을 기억하고 기념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빠르게 대중화되었고, ‘사진관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분야가 폭 넓게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지난 19세기초반에 사진술이 발명된 이후 인류는 역사적으로 가장 급변하는 시기를 겪었고, 수많은 사건, 사물, 인물 등을 카메라로 기록하며 역사에 남겼다. 그중에서 특정한 사물 things을 사진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비롯된 행위인 경우도 있지만, 또 다른 측면의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자신의 관심사를 드러내는 것이자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미적인 감각 및 세계관을 표출하는 행위이다. 이와 같은 정물사진은 회화적인 미감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회화와 사진이 추구하는 미학적인 의도는 이처럼 상당부분 겹친다. 특히 동시대사진에서는 그러한 경우가 흔하다.
전통적인회화에서는 과일, 채소, 생활소품 등을 표현대상으로 많이 다루었는데, 20세기 모더니즘사진가들도 이와 유사한 사물을 표현대상으로 선택해서 자신들의 미적인 감각을 표현했다. 카메라를 통해서 재현된 사물은 외형적으로 실제 대상과 유사하지만 사진가의 표현 욕구에 의해서 사물의 특정한 측면이 부각되기 때문에 낯설게 보일 수도 있고, 사물의 본래의미와는 동떨어진 새로운 의미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진가가 선택한 앵글 및 프레임, 조명의 방향, 톤, 컬러 등에 따라서 최종결과물의 외관이 달라지고 새로운 내러티브가 발생하기도 한다. 김건기가 생산한 정물사진에서도 이와 같은 미학적인 의미가 있고, 작가의 세련된 감각과 카메라의 기계적인 특성이 효과적으로 매치 match 되어 보는 이의 지각知覺을 매혹시킨다. 작가는 음료수병, 화장품용기 등을 표현대상으로 선택하며 초월적인 공간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장면을 구축했다. 현실공간에서 포착한 사물이지만 대상과 배경을 이루는 공간을 단순하게 재구성하여 초감각적인 결과물을 생산했다. 가장기본적인 사진 찍기 방식은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 사람 혹은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가가 선택한 카메라 조작과 후처리 과정에 따라서는 현실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진이미지가 생성되기도 한다. 작가가 이번에 생산한 정물사진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 결과 사진이 아닌 포토리얼리즘회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미적인 감각과 교감하는 대상을 선택하며 낯설게 재배치했다. 특별한 사진기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세련된 카메라워크 camera work와 예민한 노출의 선택 그리고 후반작업에서 대상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사물이 낯선 대상으로 변주되었다. 김건기가 선택한 표현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사진사나 미술사적으로 전혀 새로운 그 무엇은 아니다. 하지만 선배예술가들이 이룩한 업적을 자신의 미적인 주관 및 동시대의 문화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재조합해 시대와 조우하는 조형언어를 생산했다. 산업화시대에 성장한 세대로서 자연물이 아닌 인공물을 다루어 앞선 세대의 사진가들과는 차별화된 정서와 감각을 일깨워준다.
작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패션사진가로서 1970년대에 개념적인 정물사진을 발표한 어빙 팬Irving Penn이 선택한 표현방식처럼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도 했지만, 톤, 컬러 등의 통제를 통하여 현실의 범주를 벗어나 존재하는 것 같은 결과물을 생산했다. 또한 1980년대에 주목받은 작가인 잰 그루버Jan Groover나 바바라 카스텐Barbara Kasten의 정물사진처럼 독특한 컬러감각을 드러내어 탈 모더니즘적인 작가의 미적주관을 환기시킨다. 사진은 일반적으로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실재를 객관적으로 느끼게 하는 매체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현실의 몽타주이고 재조합이다. 사진 찍기 과정 및 후반작업을 거치면서 작가의 표현의도에 의해서 새로운 맥락의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김건기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이러한 과정에 개입하여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냈다. 그로인해 대상이 해체되고 재구성되어 보는 이들에게 다른 감각의 층위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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