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학 개인전 [건조장이 보이는 풍경]展 2016년 4월6일 - 4월12일 갤러리 나우 | ||||
먼 듯 가까운 기억의 풍경 글 : 최연하 (전시기획, 사진비평) 이인학은 전작, <순연한 마음의 풍경>에서 한국의 원형의 공간을 점묘화처럼 보여줬다. 맑고 그윽하게 펼쳐진 농촌의 풍경들은 동근 곡선들을 이루며 온유한 미적 감응으로 전달되기에 충분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건조장이 보이는 풍경>에서도 작가는 순연한 마음의 풍경을 이어간다. 수많은 점들로 이뤄진 빛깔의 덩이들은 따뜻한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조를 형성하며 이제 그의 사진에서 고유한 형식이 되었다. 풍경/대상을 바라보는 사진가의 시각도 깊고 유연해졌다. 다만 전작과는 달리, 이번엔 특정한 건물들이 중심에 부각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담배를 건조하기 위해 지어진 ‘건조장’이 매 사진마다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남아 있더라도 깊은 두메산골이나 인적이 끊긴 길 끝에 무너질 듯 자리하고 있기에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건축물이다. 왜 건조장일까. 사연을 들어보니, 담배 농사를 지었던 작가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농촌에서 한 때 담배 농사가 성업이었을 때, 잎담배를 건조하기 위해 흙벽돌을 높게 쌓아 올린 건조장은 방앗간처럼 흔하게 볼 수 있는 건축물이었다. 지금은 공동 건조장에서 현대식 전기 건조기를 사용하기에 집마다 딸려 있는 황토 건조장을 거의 볼 수 없지만 말이다. 때때로 한 사진가의 사진적 궤적을 따라가다, 사진가의 생의 내용을 이루는 존재적 위치를 발견하곤 한다. 사진이미지의 의미가 분출하는 지점을 찾는 일이 사진 존재의 층위를 탐구하는 것이고, 그것이 인간학적으로 휘어 있다면 사진가의 자리를 탐색하는 여정이 되기도 한다. 이인학의 새 작업, <건조장이 보이는 풍경>은 작가의 삶의 자리, 사진의 자리, 기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닿을 수 없는 풍경이나 잃어버린 시간, 혹은 떠나 온 고향 등 사라진 것들을 되찾고 싶은 것은 사진하는 이들의 공통된 욕망이다. 하지만 그것을 (그림이 아니라) 사진으로 촬영하는 것은 허공으로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주워 담는 일만큼 불가능하다. 이미 없어지고 지금은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기억의 풍경을 재현하기 위해 점을 찍듯이 시간의 선과 공간의 면을 결합시키며 꿈꾸듯이 색을 만들어간다. 멀어져가는 빛은 다시 모아 가깝고 선명하게, 가까이 있는 것은 멀리 보내는 방법을 수차례 반복하며 초점거리를 와해시켜 기억을 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억예술인 사진은 우리의 기억을 강화시키기도 하지만, 변형시키기도 한다. 아니면 초점거리에 따라 순차적으로 떠오르게 하거나, 잊은 줄 알았는데 두터운 층을 이루기도 한다. 렌즈의 초점거리에 따라 대상을 향한 심도가 제각각이듯이, 이인학이 기억을 환기하는 방식은 끝내 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으로 반추상화처럼 번져있다. 그의 풍경이 아련하지만 가깝게 공통감을 형성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아련하면서 가까운 기억은 대체 어디에서 발원하는 것일까. 시간상으로는 멀리 있지만, 오감이 통째로 일어나는 공감각은 기억의 자장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여름 날 담뱃잎을 따는 작업은 새벽부터 시작하여 해가 중천에 오기 전에 끝내야 한다. 담배 밭의 후끈한 열기와 지독한 냄새로 오랫동안 작업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 키보다 컸던 담뱃잎 사이를 겨우 걸으며 후끈하게 뻗은 이파리를 딴 후 가려움으로 시달렸던 기억은 멀리 있지만 나에게도 아주 생생하다. 이인학이 담배 건조장을 촬영할 때, 그 파사드를 정확하게 나열하듯 촬영하기보다, 불확실하고 희미하게 표상한 것은 바로 그 기억의 자리가 후각과 촉각이 뒤엉킨 담배 밭 한가운데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에 비해 건조장은 곧장 수확의 기쁨으로 연결되는 부모님의 높고 따스한 마음의 원형이기에 흐린 이미지로 남아있을 것이다. 수확한 담뱃잎을 잎사귀 그대로 말리는 장소인 건조장이, 작가에게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물기를 가득 품은 푸른 잎사귀로, 멀리서 가까이에서 진동하는 것이 이인학의 신작, <건조장이 있는 풍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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