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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대학교 포토아카데미 사진미학과 담론반 회원전 [ 그렇게 만나다 ]展

yun jong 2015. 11. 25. 09:11

상명대학교 포토아카데미 사진미학과 담론반 회원전 [ 그렇게 만나다 ]展
2015년 11월25일 ~12월2일

갤러리 나우 

 

 

 

 

 

 

 

 

그렇게 만나, 위안을 주다.

조정화 조형예술학 박사

「그렇게 만나다」전(展)은 상명대학교 포토아카데미 ‘사진미학과 담론’반의 회원 전으로 구제철, 김영일, 마석구, 변해진, 송인순, 유경숙, 이희연, 임순옥, 최광회 이상 9인의 작가들이 참여 한다. 이번전시는 우연과 필연, 또는 의식과 무의식 등에 의한 ‘찰나적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문득, 어떤 대상과의 순간적인 ‘찰나적 만남’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이러한 만남은 직관을 관통하는 만남이거나 작가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을 통한 위안이며 상상 등으로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작가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대상과의 근원적인 만남에 대한 조망(眺望)이며, ‘자기 위로’의 환원(還元)이다. 즉, 대상과의 만남을 통해 ‘위로 받음’으로 생성 된 언표(言表)적 의미들을 이제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예술비평가)은 관람자에게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사진가는 먼저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 9인의 작가들 역시 사회학적 관점이거나, 지극히 사적인 '안'과 '밖'의 재현으로 들춰낸 '찰나적 만남'을 자신만의 ‘심미적 주체화’를 위해 부단히 매달려 왔다. 이제 자신만의 해독(reading)과 해석(interpretation)으로 관람자와의 일체화를 꿈꾸고 있다. 전시기간 중 작업 과정의 에피소드와 특별했던 만남의 순간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작가 토크'가 진행된다. 어느 작가, 어느 작품과의 접점을 공유하게 되든 지 간에 위로에 대한 무기력증, 무관심의 'End'가 아닌, 'And'로 열림의 만남이 될 수 있도록 왜(?)라는 질문은 잠시 유보한 채 나의 무의식의 끌림으로부터 관람을 시작해 보길 권하며 그것이 교감과 치유로 정서적 위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구제철은 “사선(沙線) 너머, 저 건너에 나의 희망, 행복이 있다.”라고 말한다. 작가에게 사막은 고진감래(苦盡甘來)로의 희망을 찾는 장소이다. 그는 ‘의도’와 ‘의도되지 않음’, '의미'와 '무의미'와의 교감을 통해 사막의 단면을 시각장(field of view) 안으로 불러들인다. 본질적 물음에 대한 투영인 ‘along the line‘은 선(線)과 묵(墨), 흑백의 농담으로 응축된 고요한 침묵의 사막이다. 이는 “세상의 광활함과 경이로움을 가장 잘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자연이다.” 라고 말한 조지아 오키프가의 말을 한 층 더 공감 하도록 한다


김영일은 센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게이 퍼레이드'를 4년 동안 오가며 계속해서 일련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Let it Be’ 시리즈는 사회학적 인식의 시선에서 시작 된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와 같은 패러다임의 접점을 사진과 동영상 작업을 통해 ‘다시 제시(re-presence)’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에 있어 '재현(representation)'의 가치는 소통할 수 있을 때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제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성 정체성을 쉽사리 규정하지 않는 채 단지, 긍정적 환기를 도모한다.
마석구의 ‘Untitled’는 곤궁(困窮)하고 피폐(疲弊)하기에 처절할 수밖에 없는 비둘기의 날개 짓을 통해 어쩌면 너무 멀고도 아득할 이상향(理想鄕)을 지향한다. 한때 ‘평화’의 상징이라 불러졌으나 어느 날 부터 인가 관심 밖, 냉대 뿐, 갈 곳 없는 새로 전락하고 만 비둘기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 매개체인 것이다. 이와 같은 만남은 개인의 사유를 각인하는 조형 언어인 동시에 그녀가 마주한 현실의 이중성에 대한 소환이기도 하다. 따라서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에게 ‘사이 없음(無間)’이 조우(遭遇)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변해진은 오랜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자연과의 긴 시간 여행 중 순간의 캡처(capture the moment)로 남겨지게 된 사진이 바로 ‘강의 노래’다. 부제(副題)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에서 알 수 있듯 강가의 나무 그 너머, 오래도록 잊혀졌던 자아(自我)와의 만남이며,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변주(變奏)와의 만남이다. ‘일렁이되, 고요할 것’, ‘거기 있되, 없을 것’과 같은 두 개의 상반된 서술방식은 작가 스스로를 치유하고 위로하며,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침잠(沈潛)된 아련한 만남들로 이끈다.
송인순은 자연을 통해 특유의 몽환적인 시경(詩景)을 펼쳐왔다. 이번 ‘Green Lights’는 칠 흙 같은 어둠 속에서도 ‘green lights’로 향하는 물 밑 수초의, 물 위 수초를 위한 꿈으로의 자적(自適)이다. 작가는 물 위의 표상 아래, 가시화 될 수 없는 물 밑 수초의 ‘green lights’에 보다 주목한다. 그렇기 때문에 ‘green lights’ 는 환희의 빛이며, 생명의 빛줄기인 셈이다. 어쩌면 끝끝내 가 닿지 못할 피안(彼岸)으로 투사 된 ‘빛’과 ‘색체’의 향연은 잠시, 현실적 고투(苦鬪)를 잊도록 ‘쉼’을 제공하며 또 다른 빛의 아우라(Aura)를 재촉한다.


유경숙은 실경(實景)의 해체와 변형을 통한 재해석으로,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거나 더하여 나른하고 몽환적인 ‘가을 아침’을 사유 하도록 한다. 이는 작가 자신의 발원(發源)에 의한 변이(變異) 된 공간의 일루전(illusion)으로, 무의식의 노스탤지어(nostalgia)나, 시각적 환영에 의한 이상과 현실을 아우르는 절대공간(絕對空間)인 셈이다. 따라서 작가 특유의 내재적 공간은 정서적 휴식과 위안으로, 그녀가 ‘풍경’에 천착(穿鑿)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희연의 ‘설송(雪松)’은 스테인리스 스틸(stainless steel)에 레이저 프린트 한 작품이다. 이러한 묘사 방식은 그의 집요한 예술에의 추구로 시행착오를 거듭 해 가능했다. 그가 소나무를 소재로 삼는 것은 독야청청에 대해 각별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언뜻,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는 시조의 맥락에서 읽혀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삶의 역정과 연계의 실존(實存) 확인으로 차후, 그에 노에마(noema)는 무엇이며, 노에시스(noesis)는 어떤 것이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임순옥의 바우(바위)’는 원형(archetype)에 의한 즉물적 도상(icon)의 극대화로 실감된 ‘바우’다.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해석학적 관조로, 이른바 '부재의 현전(absent presence)'을 구현하고자 한다. 이는 가시성(可視性)과 비가시성과의 ‘관계사고’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에, ‘바우’의 지층에 응축된 태고(太古)적 스펙터클(spectacle)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우리를 압도하고 이러한 즉물성(literalness)은 아이러니하게도 보는 이에게 불가결(不可缺)의 위로로 다가온다.
최광회는 겨울 바닷가 모래와 바람의 물리적 현상의 공존으로 대자연의 생성과 소멸에 따른 순환을 '공간의 시간화'와 '시간의 공간화'로 감성적 판타지를 유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을 ‘이것이다’라고 바로 명사화 시킬 수 없음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다. 이는 본질적인 생명의 기운과 교감 할 수 있도록 현상을 설명하는 요란함에서 벗어나고자 한 작가의 의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Untitled’는 작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역동치는 모래 알갱이를 통해 진지한 사유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