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리(Minny Lee) 사진전 [Nightwalker]展 갤러리 나우 |
< Nightwalker > 요즘에는 누구나 쉽게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어린 시절 나에게는 특별한 날에만 만날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 아버지는 베트남에 다녀오신 외삼촌을 통해 어렵게 구입한 독일제 콘탁스 IIa 사진기를 야유회를 가거나 먼 친척이 찾아왔을 때에만 꺼내셨다. 그리고 한 장의 기념사진이라도 마음에 드는 구도를 찾을 때까지 온 힘을 기울여 찍으셨다. 반대편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에게 사진은 무척 경이롭게 와 닿았다. 미국으로 유학 와서 여러 해가 지난 1999년 처음으로 나만의 사진기를 장만했는데, 그때부터 사진은 나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던져주었고, 설렘과 희열을 느끼게 해줬고, 미궁으로 떨어트리기도 했다. 내 작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어린 시절이다. 두 살부터 여섯 살까지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는데, 그것이 친숙한 환경에서도 늘 주변을 관찰하고 성찰하는 습관을 가지게 했다. 이후 서울 근교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계절의 변화와 자연이 뿜어내는 기운을 느끼게 됐다. 나는 일상에서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소소한 것들에서 무언가를 이끌어내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오래도록 관찰한 결과 그것의 정수를 집어내지만 결국에는 다시 무의 경지에 이르는, 그것을 추구하고 싶다. 화가 조지오 모란디(Giorgio Morandi)의 작품과 사진가 해리 칼라한(Harry Callahan)의 작품이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건, 오랜 시간 자신을 쏟아부어 영글어 낸 시간의 깊이를 단순한 형상으로 표현해 내서이다. 나에게 사진은 시각적으로 그려내는 시(詩)라고 할 수 있다. 산문보다는 운문인 것이다. 사진으로 현실을 재현하기 보다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흔적을 만들어내는 것에 관심이 많다. 세상에 혼재하는 수많은 요소들 중에서 사진가가 ‘선택해서 보는 그것’을 찍는 것이 사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된 요소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그 무엇으로 출현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진다. 조르지오 디 키리코(Giorgio de Chirico) 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그림에서처럼 평범한 것들이 낯설게 다가와 보는 이가 긴장감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들여다보도록 만드는 것이 예술가가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인카운터스(Encounters)는 나의 이런 생각을 가장 처음 반영한 시리즈이다. 집 주변의 나무들과 일년의 시간을 보낸 뒤 비로서 다른 곳에서도 찍기 시작했다. 흔하게 접하는 개성 없어 보이는 나무들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줬고,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춥고 어두운 겨울밤에 주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것은 실루엣이 강조된 겨울나무와 긴장감마저 자아내는 스산한 밤의 분위기에 이끌려서다. 미리 계획하고 셋업해서 사진을 만들기 보다는, 나무와의 만남과 순간적 일체감에 집중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진은 무거운 중형 아날로그 사진기를 삼각대 없이 손으로 든 채 촬영되었다. 시작한 지 이년이 지나서야 비로서 이 시리즈는 나무의 초상사진이고 각각의 나무와의 ‘만남’이었다는 것을 깨달아 '인카운터스'란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그 제목은 또한 나무와의 우연한 마주침과 그것이 주는 설렘도 내포하고 있다. [ 전시 서문 ] 갤러리 나우에서 개최하는 현대 사회의 발달과 도시생활로 인해 '자연'은 시간을 내어 찾아가야 하는 장소나 특별한 곳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바쁜 일상의 현대인들에게 명상할 시간과 공간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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