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및 소개 글

김종호 소나무 사진전

yun jong 2017. 6. 28. 13:40



김종호 소나무 사진전 

2017년 6월28 일 ~ 7월18일

갤러리 나우







김종호(b.1953)는 40여년간 고집스럽게 우리나라 산하의 민족적 정기와 맥을 찾아 교감하는 소나무 촬영의 외길작업을 해 왔다. 고집스런 그의 작업에는 시간의 두께와 함께 얻어진 영혼의 깊은 교감으로 인해 그 한 사람의 역사 40년과 맞바꿀만한 숭고함이 담겨 있다. 그가 촬영한 소나무는 이미 30%이상이 소실되어 다시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기도 했고 지구온난화와 재선충으로 인해 결국은 소나무가 멸종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소나무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 그의 작업은 자신이 소나무가 되어 전국 300만 킬로를 달리고 달려 깊은 교감으로 얻어진 결실로 그의 고집스러운 깊은 숨과 땀이 깊게 배어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소나무가 많은 지역에서 소나무와 함께 호흡하며 자랐다. 자연스럽게 소나무는 그의 영혼과 소통하면서 “영혼의 通함”으로 일체감을 느끼는 한몸이었다. 그 ‘혼’은 그가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원동력인 동시에, 소나무라는 피사체가 그에게 각별한 이유이기도 했다. 사진가김종호는 무려 300만km(지구의 80여 바퀴)를 달리고 달려 촬영했다. 2~8시간의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장노출, 6X6, 6X17, 5x7, 4x10, 8x10 인치의 대형필름과 코닥 8x10카메라, 16개의 렌즈를 사용 한다. 거기에 토닝된 젤라틴 실버프린트 인화로 소나무의 질감과 더불어 양감, 거기다 신령스러운 한국 특유의 소나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영혼의 느낌까지 잡아내고 있다. 

새벽녁 깊은 안개 속에 신비롭게 서 있는 소나무의 자태는 신령스러움 그 자체로 그와 소나무는 일체가 되고 만다. 오랜시간 한국인들의 삶과 함께 이어져 온 소나무의 혼과 우직하기만 한 작가와의 소통이 그의 소나무작업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한 한국의 소나무에서만 드러나는 곡선의 아름다움, 그리고 리듬감과 경쾌함은 우리민족의 “흥”과 또한 맞닿아 있음을 바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인이라면 모두 교감 할 수 있는 “通” 함을 경험 할 수 있는 전시이다.

갤러리나우



솔숲 파수꾼으로서의 사진가

김종호의 소나무 연작은 1970년대 초의 어느 날, 한 스님께서 보여주신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그날의 느낌을 마치 사진 속 소나무의 ‘혼’과 자신이 하나로 일치하는 듯 한 묘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사진에 찍힌 어떤 사물에서 ‘영혼’을 느끼고 정신적인 교감을 이룬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미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격렬한 흥분이나, 정신적인 일체감에 대하여 자신의 일기에 남긴 바 있다. 1817년의 어느 날 그는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귀도 레니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를 보고 나오던 중 문득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리면서도 어떤 황홀경을 경험했다고 썼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 이라고 이름 붙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만 느낄 수 있다는 이러한 증상 겪은 뒤의 행동은 아마 각자 다를 것이다. 

김종호는 그날 이후 1974년부터 소나무 사진을 찍기 시작하여 오늘까지 무려 40여 년을 지속하고 있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나무로 인식되어 왔다. 소나무는 ‘솔’과 ‘나무’가 결합된 단어로 ‘솔’은 ‘수리’를 거쳐 ‘술’로 불리다가 다시 ‘솔’에서 받침이 빠지면서 ‘소’가 되었다. 上(위, 하늘, 임금), 高(높다), 元(으뜸)이라는 ‘솔’의 뜻으로 인해 소나무는 나무 중의 으뜸으로 통하였다. 또한 소나무가 ‘우리 민족의 나무’라고 불리는 것은 수많은 소나무 신화에 비롯된 것이다. 고려 말기의 학자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의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는 하늘의 신이 땅으로 강림할 때의 통로였는데 그 나무가 바로 소나무였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 민족은 서구와는 다른 소나무 문화를 형성해왔다. 우리 조상들의 일상에서 소나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면서 활용되었다. 선조들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난 첫날에 푸른 생솔가지가 꽂힌 금줄을 쳐서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자 했으며, 관솔로 불을 밝혔으며, 솔잎과 송진, 껍질을 먹거리와 약으로 활용했으며 연료로 쓰기도 하고, 죽을 때에는 소나무로 짠 관에 안치되었다. 또한 사악한 귀신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죽은 이의 영혼이 평안하도록 지켜준다고 믿고 무덤가에 소나무를 심었다. 이렇듯 소나무는 우리 조상들의 삶과 죽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민족의 나무였던 것이다. 또한 기품 높은 소나무에는 인격을 부여하고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김종호의 사진 작업은 이렇듯 소나무가 우리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어떤 소나무 문화를 형성해왔는가에서 출발한다. 그간 전국 곳곳으로 더 다양한 소나무와 군락지, 숲을 찾아 다녔는데 40년 동안 차로 이동한 거리가 무려 300만 km에 달한다고 한다. 지구 한 바퀴의 거리가 약 4만 km라고 하니 가늠이 쉽지 않는 그 거리의 상당함을 알 수 있다. 그가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소나무에 매진한 데에는 정신적인 교감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1987년 독일 방문길에서 소나무재선충으로 인해 20% 정도의 소나무들이 이미 사라졌으며, 지구 온난화와 환경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전 세계의 소나무가 멸종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후 소나무로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 소나무들이 더 소실되기 전에 부지런히 기록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졌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가 촬영한 필름이 30만 컷이 넘는다고 하니 과연 ‘불광불급(不狂不及)’ !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도달하지 못한다)’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김종호의 사진 프로세스는 여전히 6x6inch의 중형과 6x17, 4x5 4×10, 5×7, 8×10inch의 대형 포맷의 카메라, 흑백과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렌즈를 구비하는 것은 세심하게 촬영거리와 화각을 예측하여 촬영한 뒤에 트리밍(trimming)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엄격한 태도를 말해준다. 편리한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방식의 번거로움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지의 ‘불변성’과 ‘영원성’에 대한 추구일 것이다. 예로부터 소나무는 십장생의 하나로 해(日)·달(月)·산(山)·내(川)·대나무(竹)·거북(龜)·학(鶴)·사슴(鹿)·불로초(不老草, 芝)와 더불어 불로장생을 상징하였다. 영원히 늙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 사물과 생물에 투사되어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는 자연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옛 현인들은 소나무나 바위처럼 오래 살면서 자신도 스스로 ‘자연’이 되고자 염원하였다. 그러므로 소나무의 ‘영원성’을 영구히 변하지 않는 사진으로 보존하려는 김종호의 열망과 호응을 이룬다.

그가 고집하는 또 다른 촬영 방식은 노출시간이다. 그날그날의 날씨와 촬영 시각에 따라 노출 시간이 달라지지만 그는 최대한 장시간의 노출을 고집한다. 대낮에 ND필터(neutral density filter : 특정한 파장 범위 내에서 각 파장에 대해 비슷한 정도로 빛의 투과량을 감소시키는 필터)를 사용하여 장시간 동안 노출시킴으로써 특수한 색감, 안개와 바람의 속도와 흐름, 공기와 빛의 누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예컨대 삼릉에서 이른 아침 안개에 쌓인 소나무 숲을 촬영한 사진은 각 2분, 4분, 8분 때로 4시간 동안 노출한 것이다. 덕분에 가까이 있는 근경의 소나무는 진한 먹색으로, 중경의 회색, 멀리 원경의 밝은 회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조를 통하여 대기의 기운이 잘 드러나 있다. 소나무의 영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역광이나 측광의 적절한 각도 선택도 매우 중요하다. 빛에 따른 그림자, 빛의 번안으로서의 색, 줄기의 형태와 소나무 껍질의 질감 표현은 그의 사진에 힘을 더하는 또 다른 요소들이다. 경주의 흥덕왕릉에서 촬영한 사진에는 땅과 소나무의 줄기 전면이 붉은 색으로 덮였고 솔잎은 짙은 푸른색을 띠며 강렬한 색채 대비를 이루고 있다. 땅에 드리운 그림자가 사라지기도 하고 여러 방향의 그림자들이 중첩되어 비현실인 분위기가 스며들었다. 이는 ND필터를 사용하여 무려 2시간의 노출을 준 덕분이다. 김종호의 사진은 이렇게 오랜 기다림과 인내의 결과물이다. 원래 소나무 줄기는 일정 붉은 색을 띠면서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를, 푸른 솔잎은 태양이 솟는 동쪽의 생명의 기운을 상징하였다. 이는 단청(丹靑)이라는 종교적인 색채의 기원이 되었다. 이미 많은 사진가들이 무수히 찍어온 흔한 소나무 사진들과 달리 김종호의 이 사진이 독창적인 것은 그가 소나무 자체를 찍으려했다기보다 소나무가 우리 민족에게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독특한 컬러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김종호의 작업은 무엇보다 소나무 줄기의 구불구불한 형태와 다양한 직선과 곡선의 반복과 교차, 변화와 리듬의 조화로 조형미를 구축하는 것이다. 삼릉, 흥덕, 군위 일대에서 촬영한 흑백 사진에는 그런 시각적인 리듬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용트림을 하는 듯 한 독특한 형상과 한국 소나무의 특징인 육각형 비늘 모양의 나무껍질의 세부 묘사는 그가 빛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강조하고자 하는 요소들이다.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는 좋지 않은 토양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휘어진 소나무의 형태는 인체의 일부분을 연상시킨다. 변화무쌍한 선으로 이루어진 소나무 군락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계절 변하지 않는 소나무의 항구성이 포착된 작품 앞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지금-여기의 삶의 소요를, 소나무 숲의 파수꾼을 자처한 사진가 김종호는 어떻게 반추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김소희(사진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