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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개인전 [시간지우기 II]展

yun jong 2016. 10. 7. 11:11

김수길 개인전 [시간지우기II]展

2016년 10월5일 ~ 10월11일 

갤러리 나우




잊지 않기 위해 지우기
시간은 그대로 기억되지 않는다. 시간 속 경험과 느낌은 의식 또는 무의식적 편집을 거쳐 뇌에 저장된다. 기억은 편집된 시간이고 스토리이다. 그렇게 기억된 스토리는 우리의 삶과 존재를 규정한다. 결국 시간은 그대로 기억되는 게 아니다. 무수한 스틸 컷을 잘라내 100분짜리 영화 한 편을 만들듯 기억은 ‘시간 지우기’를 거쳐 완성된다. 

여러 개의 시점을 담은 ‘큐픽’
김수길 작가의 시간 지우기는 괴로웠던 지난날을 잊으려는 게 아니다. 잘 기억하기 위한 작업이다. 그의 사진에는 적게는 2컷에서 많게는 8컷까지 중첩되어 있다. 한 피사체를 여러 시점(視點)에서 찍은 사진이 결합되고, 한 시점에서 시기별로 찍은 사진이 겹친다. 다수 시점이 반영된 작품으로 ‘큐픽(Cupic; 큐비즘과 사진의 합성)’으로 부를 수 있다. 사진 한 장에 여러 장면을 담은 초단편 영화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꽃들 사이로 자전거가 보인다. 한쪽 구석엔 대걸레도 있다. 타자기가 널려있는 사진 위로 하얀 꽃이 지천이다. 담벼락 낙서 위에는 무용수들의 발이 차지하고 있다. 한쪽 벽에 있는 창문은 막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속에 한 여인의 뒷모습이 담겨 있다. 숨은 그림 찾듯 사진들을 응시하다 보면 저마다의 품고 있는 기억이 피어난다.

그와 인연을 맺은 지 20년이 넘었다. 때때로 만나 서로의 안부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였다. 그가 제과제빵 장인의 아들로 태어나 한때 회화 공부를 했고, 인사동에서 꽤 유명했던 카페의 주인이기도 했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으려 제과제빵 기술을 배웠다는 이야기는 그 세월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다. 

그가 사진을 찍는다는 말을 들은 건 10년 전이었다. 낡은 카메라 가방이 눈에 띄었다. 중고 디지털 카메라 하나를 샀다고 했다. 그저 취미생활을 하나보다 했다. ‘그래, 머리도 식힐 때가 되었지. 많이 지쳤을 거야.’ 그는 20대 때 성공한 청년사업가라는 말도 들었지만, ‘반짝 성공’일 뿐이었다. 이후 10여 년 간 여러 직업을 거치며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이화동 낙산에서 사진 전시회를 한다고 했다. 낙산 꼭대기 마을 공터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그가 1년 동안 찍은 낙산마을의 사람, 풍광 사진이 걸려있었다. 서울에도 이런 곳이 남아있었다니. 
그런데 몇 달 전 낙산마을로 오르는 계단의 벽화를 누군가 지워버렸다. 낙산마을을 명소로 만든 상징물이었다. 그 전과 후도 김 작가의 카메라에 담겼을 것이다. 이를 합치면 어떤 느낌일까. 그런 야만을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리라. 2008년부터 시작한 그의 ‘이화동 낙산 다큐’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진이 말을 거네, 움직이네
2013년 3월 계간 <카페人>을 창간하며 김 작가의 작품을 싣기 시작했다. 그의 포토 블로그에서 잡지에 사용할 사진을 고르는 일은 설렌다. 특히 큐픽 기법으로 완성된 ‘연작’ 사진은 여러 가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 사진에 담긴 이미지들을 느끼기엔 모니터가 너무 작아 크게 인화했을 때의 느낌이 궁금하던 차였다. 

많은 작품들 중에서 고르고 고른 20여 편의 작품이 ‘시간 지우기 2’로 관람객들과 만난다. 작가가 기억으로 남긴 순간들의 사진이다. 말을 거는 사진이다. 정적이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사진이다. 

한 컷을 위해 작가는 오늘도 시간을 지운다. ‘잊지 않기 위해’ 시간을 지운다. 그렇게 응축된 순간들의 이야기는 울림이 크다. 지우면 여운이 깊다. 


㈜벼리커뮤니케이션 대표 손인수(카페人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