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및 소개 글

정필석 개인전 [Truck] 展

yun jong 2016. 7. 21. 14:17


정필석 개인전 [Truck] 展
2016년 7월20일 ~ 7월26일

갤러리 나우







정필석의 <트럭Trucks>으로부터

트럭이란 화물을 운반하기에 적합하게 제작된 자동차를 말하며,
트럭 운전대 위치와 적재함에 지붕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또한 소량 및 대량 운송의 중량에 따라서 트럭 유형이 구분된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M. Merleau-Ponty는 <지각의 현상학Phenomenology de la Perception>에서 구조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끝없는 질문”으로 규명한다. 여기서 보이는 것이란 ‘드러난다’는 뜻이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숨어 있다’라는 뜻이다. 결국 인간의 삶은 지각 안에서 부단히 보임과 보이지 않음에 대한 탐색과 성찰이라는 말이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언어(말)와 표상(사물)으로부터 그 실재함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사실이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반드시 가시적인 문제가 아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철저히 은닉되고 은폐된 오로지 ‘구조Structures’로서 존재하는 것들은 더욱 그렇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도시구조이고, 산업구조이고 유통구조이다.

때문에 구조를 바라본다는 것은 은닉되고 은폐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지각의 현상학”이다. 그러니까 구조의 들춤 혹은 노출의 문제이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이끌어가는 시스템 사회에 대한 탐색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이 이 문제에 천착한 것은 매우 오래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계미학” 혹은 “유형학”의 사진이 현대사진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유형학적 사진이 힘을 잃지 않은 것은 역시 보이지 않은 현대사회의 구조의 문제가 첨예하기 때문이다. 가령 오늘의 문제는 물류와 유통이다. 현대사진이 물류 및 유통구조를 바라보고 그것들을 표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홈쇼핑, 택배) 물류 및 유통구조보다 핫 이슈는 없다.

정필석의 <트럭(Trucks)>은 유형학의 모습으로 나타난 물류 및 유통구조의 들춤이다. 그러니까 1960년대 독일 유형학의 창시자 베허 부부Bernd & Hilla Becher가 충격적으로 들춰낸 똑같아 보이는 물탱크 16개, 똑같아 보이는 용광로 16개, 똑같아 보이는 컨베이어벨트 24개, 똑같아 보이는 사일로 28개의 사진을 들고 나왔던 펼침의 모습이다. 이것이 기계미학으로서 유형의 모습이고, 도감의 모습이고, 또 (트럭)앨범의 모습이다. 오로지 유형과 구조만을 들추는 기계미학의 본질이다.

때문에 정필석의 “트럭”은 그 표현이 최대한 객관적이어야 한다. 또 가치중립적이어야 하며 기계적 본질에 충실한 물질적 절대 기하학이어야 한다. 예컨대 트럭 사진을 보고 곧바로 누구의 트럭, 뭐하는 트럭, 얼마짜리 트럭, 어떤 제품, 어떤 브랜드의 트럭으로 나타나면 실패한 사진이다. 기계미학은 오로지 구조와 유형의 ‘차이’, 즉 트럭들로부터 “다르면서도 같은 것(유형)”, “같으면서도 다른 것(도감)”의 차이만 바라보게 해야 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정필석의 사진은 성공하고 있다. 철저하게 감정을 억제한, 매우 메마르고 혹은 무미건조하게 트럭의 구조와 유형의 차이들을 ‘정면성’과 ‘전면성’을 통해서 바라보게 한다. 또한 균일화된 톤, 중립적 회색의 톤으로 최대한 톤의 감정을 절제하는 컨셉트의 탄탄함과 분명함을 드러낸다.

정필석의 사진적 접근이 기계미학으로서 유형학적 사진의 근간이다. 필수적인 요소이고 당연히 지켜야 할 기계미학의 요건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 메마르고 차가운, 보이지 않는 구조 그러나 현대사회와 문화를 이끄는 물류 및 유통의 구조는 드러나기 어렵다. 구조란 은닉된 시스템이고 프레임이다. 정필석의 사진처럼 구조는 아름답지 않다. 또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현대사진의 모습이다. 정필석의 “트럭”을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다.


진동선, 사진평론가, 현대사진연구소 소장




Trucks


출퇴근을 위하여 도로를 무심코 달리던 어느 날 무거운 짐을 한 가득 싣고 고갯길을 힘겹게 오르는 트럭을 보는 순간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큰 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자기의 소임을 묵묵히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이런 모습에 눈이 가고 마음이 갔다. 이번 작업을 시작하게 된 모티브이다.

이런 모습들을 가장 진솔하게 기록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베허부부가 사용한 유형학적인 방법으로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가장 사실적이고 객관적이며, 엄정한 시선으로 촬영하여 무표정(Deadpan)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중립적으로 촬영한 이미지들을 유형별로 분류한 후 그리드 형식으로 묶어서 시리즈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와 같이 시리즈로 보여주는 이유는 비교를 통해서 차이를 볼 수 있게 하고 말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며, 또한 개념적으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즉, 트럭 한 대만 보여주면 트럭의 종류와 형태만 보게 되지만, 시리즈로 보여주면 각각의 사진에서 드러내지 못하는 다른 영역을 보여주고 말할 수 있게 하며, 관람자 스스로가 상상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유형학적 사진을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사진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베허부부가 사용한 유형학적 사진을 오리지널 방식대로 완벽하게 재현해 보고 싶었다. 유형학적 사진은 현대사진의 기본 베이스이며, 우리 모두는 유형학적 사진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럭은 우직하고 순박하다. 때론 잠시 쉬고 싶어도, 때론 뒤를 돌아보고 싶어도, 때론 쉽고 편안한 길로 가고 싶어도 포기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간다. 이렇게 힘들고 긴 여정을 이겨내고 이제야 뒤돌아보니 너무나 멍들고 망가진 모습에 마음이 짠해진다. 그래도 난 이런 모습들이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내가 멍들고 부서진 만큼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살찌어졌을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나의 모습이자 너의 모습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들이다. 더 나아가 현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는 이유이자 물류대국, 경제대국의 모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