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미망인의 봄 |
최봉림 |
2016년 3월 10일 ~ 3월 27일 갤러리 룩스 |
쉰 살이 지나자 봄이 보이기 시작했다. 겨울 끝에 돋아나는 새싹이 신비로웠고, 메마른 가지에서 피어오르는 봄꽃은 경이로웠다. 죽음의 겨울을 이겨낸 식물의 삶이 대견스럽고 대단해 보였다. 갱생과 신생의 봄을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봄기운이 감도는 이곳저곳을 찾아다녔고, 봄기운이 가득한 이산 저산을 올랐다. 몇 년 동안 4-5월이면 아름다운 봄을 만난다는 설렘에 먼 길도 지루하지 않았고 힘든 산행도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대형카메라 배낭을 메고 삼각대를 어깨에 걸친 나는 아름다운 봄보다 빨리 오거나 뒤늦게 도착하기가 일쑤였다. 내가 기대하는 봄은 가시지 않은 찬 기운에 몸을 사리거나, 불쑥 다가온 더위에 청순함을 잃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씩 그 봄이 속살을 드러내면, 나는 마음을 졸이며 노안을 크게 뜨고 그 신록과 꽃에 더디게 초점을 맞췄다.
이렇게 내게 봄이 다가온 것은 그렇게 지나간 버린 세월 탓이었다. 초췌해진 감성은 멀리 가버린 젊은 날을 헛되이 그리워하고 있었다. 무미건조한 일상과 닳아빠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봄날의 화사함을 욕망하고 있었다. 겨울의 움츠린 삶을 떨쳐버리고 새 봄의 새 삶을 살고 싶었다. 봄이 오는 어느 날 우리가 갑자기 푸르러진 양지쪽을 보고 놀라는 것은 동면의 삶이 불현듯 깨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새 생명의 환희를 되찾고 싶다는 충동 때문이리라.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봄꽃이 지고 신록이 짙어지면, 삶을 바꾸려는 첨예한 바람은 무뎌진다. 또다시 때 묻은 이파리와 함께 범용한 일상에 매몰된다. 눈 덮인 땅에 새 삶의 욕망을 묻어버렸듯이 짙어가는 녹음에 갱생의 희망을 덮어버린다.
이것이 불모의
겨울로부터 깨어나는 초봄에서 불임의 초여름으로 이어지는《아름다운 미망인의 봄》의 내러티브다. 따라서《아름다운 미망인의 봄》은 주제 전개에 있어서
일정 부분 T. S. Eliot의
전시제목은 James Joyce의『Finnegans Wake』(1939)의 book III, chapter 4에 나오는 문구인 “열여덟 아름다운 미망인의 봄the wonderful widow of eighteen springs”에서 따온 것이다. 이 문구를 알게 된 것은 John Cage 덕분이다. 그는 이 문구를 제목으로 그리고 그 주변 문장들을 가사로 삼아 1942년에 ‘목소리와 피아노 건반덮개를 위한 노래’를 작곡했다. 내레이터는 물론이고 내러티브를 상정하기 어려운 이 문장들은 몽환적이지만 실제처럼 감각적이다. 색은 풍요롭고 형상은 촉각을 건드리며, 선율은 속삭이고 그윽한 향기는 떠날 줄을 모른다. 내 봄 사진의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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