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 한국> 우리 국토이지만 오랫동안 소외되고 냉대 받아온 섬들. 섬순례자 강제윤은 지난 10년간 묵묵히 그 섬들만을 기록해 왔고 이제 그 기록들을 뭍으로 내보낸다. 시인이자 사진작가 강제윤이 담아낸 풍경과 인간상(像)은 그저 마주쳤거나 우연히 눈앞에 펼쳐진 자연으로서의 의미만은 아니다. 그것은 10년동안 방문한 350여개에 이르는 한국안의 크고 작은 유인도(有人島)에 대한 작가의 고집스런 애착에 가깝다. 작품은 섬 안에서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일상을 포착하고 있다. 이것은 ‘문화적 기록’이라는 면에 중점을 둔 작가의 의도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기록은 사진으로 쓴 섬 택리지다. 작가의 사관(史觀)속의 담겨진 섬과 인간사이의 모습은 어떻게 집약되었는지 갤러리 나우에서 그 전경을 선보인다.
갤러리 나우
[작가 노트]
사실 우리가 사는 행성은 지구(地球)가 아니다. 수구(水球)다. 그 표면의 70%가 바다인 물의 행성이다. 바다에서 보면 대륙 또한 물위에 떠 있는 섬에 지나지 않는다. 대륙이 하나의 섬인 것처럼 아무리 작은 섬도 그 자체로 하나의 대륙이다. 곁에 있어도 같은 섬은 없다. 오랜 세월 섬마다 고유한 문화와 전통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외래 문물의 유입과 개발의 바람 앞에 섬들은 점차 원형을 상실해가고 있다. 멀지 않은 시간에 이 나라 대부분의 섬들이 사라질 것을 예감한다. 육지와 연결이 되고 독자적인 문화가 퇴색된다면 섬도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사라져가는 섬들, 소멸해 가는 섬의 풍경들. 한국은 섬나라다. 무려 4500여개나 되는 크고(島) 작은(嶼) 섬(도서)들이 동서남해에 흩어져 있다. 일본만큼이나 많은 섬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땅이 좁은 줄은 알지만 우리의 바다가 얼마나 넓은 줄은 모른다. 영토의 3배가 영해다. 그 영해의 중심이 섬이다. 바다로, 섬으로 가면 우리는 더 넓은 세상과 대면할 수 있다. 육로는 사방이 닫혀 있지만 섬의 길은 어느 쪽으로도 열려 있다. 섬에서 우리는 움츠러들어 있던 정신의 근육을 무한대로 키울 수 있다.
누구도 바다를 떠나 살수 없다. 잊고 살지만 우리는 모두가 섬사람들이다. 누구는 큰 섬에 살고 누구는 작은 섬에 살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랫동안 섬을 잊고 살았다. 무관심과 소외 속에 잊혀져 가고 소멸해 가는 섬들을 위해 나그네는 섬들을 기록해 왔다. 10년 동안 사람이 사는 한국의 유인도 500여개 중 350여개를 답사해서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 사진전은 그 10년 동안의 내밀한 기록이다. 나그네는 지금도 여전히 섬을 걸으며 사라져 가는 섬의 일상과 문화를 기록하는 중이다. 역사가 있어도 기록이 없으면 역사란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섬에서도 과거 수 천 년 동안 사람들이 살았으나 섬 살이에 대한 기록은 전무 하다시피 하다. 그래서 섬은 있으되 섬의 역사는 없다. 지금도 섬에 대한 무관심은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섬을 기록하는 사관을 자임하고 섬을 기록해온 것은 그 때문이다.
나그네는 일주일만 바다를 못 봐도 몸이 바짝바짝 타 들어 간다. 바다 곁에 서면 몸은 다시 물먹은 건해삼처럼 부풀어 오르며 생명력을 되찾는다. 태생적 섬사람인 까닭이다. 선박과 항해술의 발달로 섬으로 가는 길은 부쩍 가까워졌는데도 어째서 우리는 여전히 섬들을 멀게만 느끼는 것일까. 수만 리 먼 나라들을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우리는 바로 곁에 있는 섬으로는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섬은 불편하고 척박하고 버림받은 유배의 땅이라는 육지 중심의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뿌리는 조선왕조의 폐쇄적인 해양 정책인 공도 정책에 잇닿아 있다.
우리는 섬을 배제하고 오랫동안 좁은 땅에서만 갇혀 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시야도 폐쇄적으로 변해버렸다. 사대적 습성이나 이방인에 대한 배타성은 그에서 비롯된 바 크다. 섬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넓은 세계의 주인공인가를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육지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충분히 크고 드넓다. 사대주의 따위가 들어설 틈이 없다. 육지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섬은 결코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다. 섬은 한없이 넓은 바다를 향해 무한히 열려 있다. 그러므로 섬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개방성과 열린 사고를 되찾기 위한 최적의 사유공간이다. 배타성 따위는 단숨에 날려 버릴 수 있다. 우리가 섬들을 사랑하고 섬으로 가야 할 이유다. <섬나라, 한국>전은 섬과 뭍을 잇는 가교가 될 것이다.
강제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