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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me City-Traverse Time and Space

yun jong 2017. 6. 9. 09:49




Frame City-Traverse Time and Space
2017년 6월12일 ~ 6월27일

갤러리 나우




Frame City
Traverse Time and Space
시간과 공간의 횡단

감각이란 몸의 기호는 우연히 그러나 종종 필연적으로 온다. 우연하다고 하는 것은 시간의 찰나성 때문이고 필연적이라고 하는 것은 공간의 불멸성 때문이다. 우리 삶이다. 그래서 도처에 있고 찰나에 있고 그리고 무거운 인식 속에 있다. 씨줄과 날줄의 교직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감싸고도는 필연적인 삶의 실타래다. 그러니까 사진가들이란 이런 우리 삶의 교직을 관찰하는 사람들이고, 반영하는 사람들이고 중계하는 사람이다. “通”한다는 말은 이런 교직의 되찾음과 유기적 관계 속에 있다. 즉 연결고리를 갖고 있음을 뜻한다. 가령 “닫힌 것이 살짝 열림 혹은 닫혀 있던 것이 은밀히 열리는 통”말이다. 그래서 사진가는 찾으려는 사람이고 들추는 사람이고 깨닫게 하려는 사람이다. 바로 통하는 사람이다. 

순리의 사진은 그런 통하는 길목을 비추는 사진이다. 닫힌 것이 살짝 열리는 은밀한 통이다. 물리적 시선으로 보면 건물과 건물 사이로 통하는 찰나적 바람일 수도 있겠고 건물과 건물 사이로 막 건너온 뜬구름일 수도 있겠다. 또 질식할 것 같은 인공물 너머로 사르르 스며들어온 자연의 안온한 보살핌 같은 것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순심 사진에 강력한 기반을 이루는 좌우 건물은 현대성의 상징이기도 하겠지만 ‘통’을 강력히 요구하고 희구하는 교직의 균형성으로 바라보고 싶다. 수직적 인공성 없이 어찌 수평적 구름이 자연성으로 자리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순리 사진에는 더 큰 밀도의 통이 있다. 바로 ‘frame city’로서 파사드(facade)이다. 파사드는 단순히 건축의 정면성이나 전면성을 지칭하지 않는다. facade는 face이다. 즉 존재형상으로 얼굴이다. 그것(facade)이 그것(face)인 즉물성(frame)이다. 순리의 사진의 힘은 바로 그 횡적이면서 종적인, 엄격한 정면이면서 전면인 삶이라는 도시라는 얼굴의 절단면에 있다. 감각이란 몸의 기호가 사진가에게는 우연이면서 필연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예측할 수 없으나 감지와 누설로서 ‘통(通)’하기 때문이다. 하긴 도시적 공간에 대해서 오래 통달했으니 시간과 공간의 횡단, 혹은 삶의 교직에 대한 절삭과 판금은 전문가라 할 수도 있겠다. 

결론으로 한 마디만 더하자. 앞에서 한 말들은 다분히 미학적이고 이론적이다. 사람들은 그런 말 안 한다. 육중한 건물과 건물 사이로 살짝 몸을 내보였다 사라져가는 구름을 보고 뭐라 말하겠는가. 이렇게 말한다. “아! 구름이다. 아름답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 아니라 건물과 건물 사이를 떠가는 구름이기에 감탄하는 것이다. 바로 이질적 진실들과 덧없음의 순간에 대한 탄복이다. 낯설기 때문이다. 단절된 것을 원래대로 회복시키는 것을 환원이라 한다. 작가란 그 점에서 환원의 꿈을 갖는 사람이다. 순리란 이름이 참 잘 맞아 떨어진다. “원래대로 되찾아주려는 마음”, 그 마음처럼 순리의 사진은 부재의 진실, 잃어버린 진실, 그것들을 되찾으려는 시간의 진실일 것이다. 하나의 통처럼, 단 한번 관통으로 부조화의 조각들을 통하게 하려는 것처럼, 환원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말이다.

진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