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문] 방글라데시의 소수 민족 줌머인(Jummas, 화전민)은 차크마(Chakma) 등 11개 소수민족 70만 명을 통칭한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차크마들은 몽골계로 외모가 우리와 비슷하고 불교도들이다. 이들은 1964년 방글라데시 치타공 산악지대에 댐 건설로 거주지를 잃고 인도로 망명하였다. 당시 인디라 간디 총리는 토지를 제공하고 차크마인들을 수용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 정부가 탄압 정책을 시작하여 차크마인들의 토지를 빼앗고 직업과 상업권, 그외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이들은 50년 이상을 살아온 땅에서 시민도 난민도 아닌 지위로 권리를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다. 1996년 인도 대법원에 이어 2000년 델리 고등법원은 차크마와 하종인(Hajongs)들의 시민권과 참정권 보장에 대한 판결을 내렸지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는 여전히 시민권과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교육의 권리 박탈 등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2002년 8월 20일 델리대학 학생이면서 차크마시민권위원회(Committee for Citizenship Rights of the Chakmas of Arunachal Pradesh) 사무총장 Susanta 씨는 차크마-하종인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이듬해 차크마와 하종 아이들의 교육기관인 Sneha School Diyun 설립을 시작으로 2007년 Sneha Vihar, 2014년 Sneha Mandir가 차례로 설립되었다. 끈질긴 노력으로 Sneha School Diyun은 정부로부터 8학년까지 교육할 수 있는 공식자격을 획득했지만 나머지 두 학교는 아직까지 자격을 받지 못한 상태다. 이 세 학교의 학생 수는 1050여 명에 달한다. 교육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가장 오래된 Sneha School Diyun에 외부 지원을 받아 벽돌로 지은 교실 두 개가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대나무를 쪼개 엮어서 벽체를 만들고 양철지붕을 인 바람과 햇빛이 술술 들어오는 가교사 수준이다. 도서관·과학 실험실·컴퓨터실·놀이터 등은 엄두도 낼 수 없다. 두 명이 앉는 책상에 세 명이 앉아야 하고, 덩그러니 걸린 작은 칠판과 손바느질로 꿰매 만든 투박한 지우개에 분필 가루와 먼지가 날리는 흙바닥 교실이다.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점심시간이면 주린 배를 안고 운동장에서 노는 것으로 끼니를 대신 한다. 우기에는 비가 들이치고 불어난 강물이 등굣길을 가로막아 걸핏하면 휴교를 해야 한다. 화장실은 노천에 대나무나 양철판으로 둘러막은 수준으로 위생 문제는 거론조차 곤란한 처지다. 그나마 따뜻한 기후라 난방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천만 다행이다. 최소 생활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박봉에도 교사들은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신념으로 헌신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교육의 질을 묻기 어렵다. 교사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전무하지만 그들의 가슴은 뜨겁다. 이곳 부모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망은 교육 강국 한국을 방불케 한다. 등교 시간이면 행여나 늦을까 자전거나 스쿠터에 아이들을 태워 데려오고, 하교 시간이면 교문 앞에 장사진을 치고 기다렸다가 데려간다.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어머니가 쌈짓돈으로 사서 쥐어준 주전부리를 들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을 찾아볼 수 없다. 집이 먼 아이들을 기숙사에 맡기기도 하는데, 엄마 품을 파고들 나이에 열악한 환경의 기숙사에서 유학 중인 어린이들이 대견스럽다. 상당한 부담인 기숙사비를 아끼지 않는 부모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더할 나위 없이 뜨겁다. 이런 걸 보면 이들의 미래는 밝다. 비록 비가 들이치는 임시교사지만 차크마의 노래는 울려 퍼지고 있다. “바뚜루뚜루 바뚜루뚜루~” 그들의 꿈과 희망도 퍼져나간다. 2017년 4월 조의환
전시는 아시아 지역의 인권 신장을 위해 기여하고 있는 사단법인 휴먼아시아와 함께 마련했다. 전시 수익금은 모두 차크마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꿈을 키워갈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데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