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선 사진전 [Eternal Longing]展 갤러리 나우 |
[ 전시 서문 ] 멜랑꼴리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사진 행위 사진은 제법 까다로운 소통의 도구이다. 사진은 세상의 일부를 선택한 단편을 사실적인 이미지로 우리에게 제시하더라도, 피사체들이 주는 표면적인 정보를 넘어 그 관계성이나 의미를 해독하는 데에는 만만치 않은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 포착된 사건이나 상황의 전후 맥락에 관한 캡션의 도움이 없다면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은 때로는 불가능한 일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주제가 작가의 내면세계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모호한 이미지 앞에서는 간혹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인간의 감정 상태를 우울, 불안, 좌절, 상실, 두려움, 슬픔, 질투, 기쁨 등등의 단어로 표기하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 되는 보편적인 정서 상태로 단순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떤 개인이 겪은 개별적인 상황에서의 심리 상태는 단어 하나보다 더 세부적이고, 미묘한 떨림으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울한 정서가 감지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냥 ‘우울’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고 해석해버리는 것은 다양한 층위의 의미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바라볼 때 무엇보다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A는 B다’라는 식으로 단순화시키는 태도이다. 임미선의 사진 행위는 누군가의 부재나 상실에 따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일종의 저항 의식으로 보여 진다. 그리고 불확실한 삶과 세상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 우울, 좌절, 절망 또는 욕망과 같은 감정들은 사진에서 몇 단계로 정리된 흑백의 톤과 밝은 빛, 그리고 빛과 그림자를 빚어지는 형상, 초점이 살짝 어긋난 얼굴의 표정, 부분적으로 보여주는 신체 일부의 동작이나 자세, 구체적이지 않은 공간, 천이나 꽃과 같은 소품 등과의 조합으로 묘한 아우라Aura를 만들어내고 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도 불현듯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이 기습해올 때마다 그 감정을 짧은 문장으로 남긴 사람이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인 1977년 10월 26일부터 1979년 9월 15일까지, 노트를 4등분으로 나눈 종이 위에 잉크나 연필로 쓴 일기 쪽지들을 모아두었다. 이 원고가 그대로 편집되어 <애도 일기>라는 제목으로 2009년 책으로 출판되었다. 짧고 절편적인 그의 글쓰기 행위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그 엄청난 상실감을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외로움과 슬픔, 좌절, 우울, 무기력감에 완전히 침잠된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표출하는 바르트식의 애도 행위로 보여 진다. 그에게 있어 어머니는 다른 어떤 대상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슬픔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랑을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는 치유의 방식은 바르트에게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그의 일기는 애도의 이름을 붙이고는 있지만 오히려 슬픔에 완전히 잠식당해있는 자신을 구원하려는 치유의 글쓰기 행위는 아니었을까? 임미선의 작업 노트에도 두세 개의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일기가 기록되어 있다. 불안정한 삶에서 비롯된 그녀의 감정은 그 언어들 틈에서도 끓임 없이 유동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르트처럼 그녀도 일상에서 불쑥 무엇인가 촉발될 때마다 그 감정들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단상으로 붙잡아 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어로 옮겨진 그 감정의 실체를 추적해보려고 했을 것이다. 무엇이, 왜 이토록 나의 삶을 흔드는가? 에 관해서. 임미선은 글을 쓰는 것에 이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며, 스스로 카메라 앞에 섰다. 언어와 이미지의 차이지만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대상이 되어 어떤 동작을 하거나 자세를 취하는 것은 언어적 소통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이미지는 부재에 저항하고자 하는 심리적인 욕망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임미선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대상의 자리에 그 대상을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몸이 들어가게 했다. 필자는 이 과정을 고통 속에 있는 자신을 온전히 대면하여 그 고통과 직면해보려는 그녀만의 치유 행위로 이해하고 싶다. 그녀가 사진을 찍고 또는 찍히는 행위에 몰입하는 순간은 슬픔이 정지된 사진 이미지로 화석화되는 시간, 그래서 슬픔도 잠시 멈추는 시간일 것이다. 불확실한 삶과 세상과의 부조화에서 오는 불안과 비애의 감정을 칭하는 ‘멜랑콜리Melancholy’는 그리스어의 멜랑(melan, 검다)과 콜레(cholē, 담즙)가 합성된 단어이다. 고대 그리스 의학은 만물이 공기, 물, 불, 흙의 4원소로 이루어졌다는 그리스 철학의 전통에 따라 인간의 체액을 혈액, 점액, 노란 담즙, 검은 담즙 4가지로 나누었다. 인간의 내면은 이 4가지 액체가 어떻게 합성되느냐에 따라 기질이 나누어진다는 것인데, 이 액체들이 완벽한 균형을 이룰 때 육체와 정신이 정상이라고 판단하였다. 4가지 체액 중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흑담즙이 과잉 분비되는 상태를 바로 우울질, 멜랑콜리아(melancholia)라고 불렀다. 어느 정도의 멜랑콜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주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나 죽음으로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 사람은 누구나 예술가나 철학자가 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멜랑콜리’는 창조의 원동력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어느 시인은 고통이 없었다면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 연인의 배신이라는 고통을 겪었던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1863-1994)는 특히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였다. 인생의 특별한 시기마다 자신과 마주하는 자화상을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뭉크 역시 그 고통스러운 감정을 집요하게 직시하면서 극복하려고 한 것이 아닐는지. 자신의 몸을 반복해서 그리는 것과 찍는 행위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단순히 그 몸이 소재라기보다는 특정한 때에 겪었던 어떤 감정들이 내 몸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어떤 흔적을 남기고 갔는가를 추적하는 과정의 하나일 것이라는 점. 정리되지 않은 내면의 감정들을 이미지로 재현하여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을 끌어안든지, 떠나보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임미선이 사진을 찍는 것은 스스로를 구원하는 치유의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임미선의 사진을 앞에 두고 ’이 사진은 슬픔을 표현한 것이고, 저 사진은 불안을 표현한 것이다’ 라는 식의 해석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지와 언어적 표현이 서로 정확히 일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삶에는 이 땅의 언어로는 번역이 불가능한 어떤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 글이 살피지 못한 다른 부분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독립 큐레이터, 김소희 [ 작가 노트 ] - 흔적이 온몸 깊숙이 훑고 지나가다- 만남에 이별이 수반되고 삶 속에 죽음이 동행하듯, 살아오면서 겪은 여러 상실과 부재의 자리엔 견디기 힘든 고통과 불안, 그늘진 슬픔과 미묘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굳게 닫힌 문을 열기란 쉽지 않다. 살려고 살아보려고 한다면 입을 벌려야한다. 크게 더, 더 크게.. - 2011. 8. 19 흩어놓은 문장들만 수첩 사이사이에 남아 쌓인다. 점점 줄어드는 말 수만큼 입을 다물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 2011. 10. 25 나는 왜 만개한 꽃을 보지 못 했는가? 그곳에 내려 앉아 비에 젖은 꽃잎에 대해 알지 못한다. - 2012. 4. 21 눈에서, 가슴에서 멀어지고 지워질까 앞서 마음을 친다. 고를 것도 버릴 것도 없이 쌓인 시간들.. - 2012. 6. 4 기억이 부르는 날, 눈물이 난다. 홀路. - 2013. 8. 10 최근 몇 년 동안 삶의 불확실성으로 몸부림칠 때마다 카메라 앞에 나를 세워 내면을 응시하였고 그러한 사진행위와 형식을 통해 일련의 정조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의식된 연출의 경로를 지나 무의식까지 반영한 심연의 그 짙은 어둠. 더는 이룰 수 없는 욕망과 아쉬움이 그저 애절하고 씁쓸한 느낌만은 아니다. 가장 생생한 작업 소재이자 도구인 나의 몸은 지난 시간의 기억-고통을 감내하느라 짐짓 다시 불러일으킨 그리움의 면역반응을 기록하기에 적합하였고 또한 충분하였다. 그 응축된 몸짓의 이미지는 부재하는 것, 상실한 것의 자리를 조금이나마 대신해주었다. 롤랑바르트 Roland Barthes는 어머니의 죽음 뒤 상실감의 슬픔이 차오를 때마다 메모형식의 단상-애도일기를 남겼다. 그가 망각의 고통을 오직 기록-글쓰기를 통해 견뎠듯이 나 역시 사진 행위로써 그렇게 위로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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