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사유 그리고 표상
글: 김영태(사진문화비평, 현대사진포럼대표)
미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풍경이 독립된 장르로 자리매김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초반에 사진이 발명된 이후 회화가 기록을 포기하고 표현을 하게 되면서 풍경화가 부각되었다. 그 이전에는 인물화나 역사화의 배경으로서 풍경이 존재했다. 19세기 인상주의화가들은 빛의 흐름에 따라서 변모하는 색채를 재현했고, 주된 표현대상이 산업화, 도시화의 영향으로 빠르게 변모하는 도회지의 풍경이나 전원을 배경으로 일하는 농민의 삶 혹은 전원 풍경이었다. 이 무렵에 초기 사진가들도 이러한 회화의 경향에 영향을 받아서 농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표현했다. 또 다른 축에서는 지질 조사를 위해서 자연풍경을 기록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순수자연풍경이 주된 표현대상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1930년대와 40년대에 미국사진가들에 의해서 성취된 결과이다. 이들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실제보다 좀 더 강렬하게 재현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안셀 애덤스(Ansel Adams, 1902~1984)를 비롯한 F64 그룹 회원들이 몰두한 미국서부풍경사진이다. 그 중에서 애덤스는 요세미티 계곡을 중심으로 한 풍경을 웅장하고 강렬하게 재현하여 대중들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이와 같은 풍경사진의 표현대상 및 주제는 1970년대를 거치면서 도시풍경 혹은 문화적인 풍경으로 옮겨 왔지만, 현재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표현대상이다.
이번에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 김기양은 일산호수공원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풍경 혹은 특정한 장면을 표현대상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일산호수공원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호수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호수가 아니라 인공호수이다. 일산에 택지를 개발하면서 근린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인공호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은 고양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시민들의 또 다른 삶의 터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는 이곳 호수공원풍경을 10 여 년 동안 카메라 앵글에 담고 있다. 2008년에 개최한 첫 번째 개인전도 호수공원에서 작업한 결과물인데,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초점을 흐리게 하고서 모노톤으로 나무를 재구성하여 수묵화와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서 작가 개인의 내밀한 삶을 기록한 결과물을 전시했다. 첫 번째 개인전에 이어서 이번 전시에서도 호수공원을 표현대상으로 선택했는데 소재가 한정적이지 않고 다양하고 카메라 앵글 및 프레임의 선택도 다채롭고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김기양은 해가 뜨기 전부터 정오가 되기 전까지 오전시간에 호수공원 주변의 다양한 장면과 사물을 카메라앵글에 담았다. 작가가 주로 관심을 갖고 주목한 대상은 호수풍경, 나무, 풀 등과 같은 자연물이다. 봄부터 겨울까지 사시사철 호수공원에서 여러 대상을 찍었다. 그래서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을 통하여 관객들은 호수공원의 사계(四季)를 접할 수 있다. 작가는 아름답고 자극적인 장면이나 대상을 표현대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시선을 받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장면과 사물에 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결코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나도 사소하고 무덤덤한 대상이지만 작가가 감각적으로 대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였기 때문에 조금은 낯설게 보인다. 또한 무엇인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호수공원은 늘 시민들이 자주 가는 휴식공간이다. 하지만 인적이 끊긴 이른 시간에 주로 작업을 하였기 때문에 작가의 풍경사진에서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원이 아니라 태초부터 있었던 순수자연풍경 같이 보이기도 하고 초월적인 세계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작품 한 장 한 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간혹 사람의 흔적이 드러나는 대상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순수자연 그 자체로 느껴진다. 작가의 작품은 얼핏 보면 가볍게 셔터를 누른 것 같이 보이기 한다. 하지만 좀 더 진중하게 살펴보면 자신의 관조적인 사유를 가시화하기 위해서 정교하게 화면을 구성하려고 노력 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생산한 사진이미지 한 컷 한 컷이 진지하고 엄숙한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호수공원에서 만난 여러 장면과 사물을 통하여 삶과 현실세계를 좀 더 여유롭게 바라보고 사유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호수공원에서 찍은 여러 사진들은 그러한 작가의 정신적인 영역을 반영한다. 이곳에서 사진작업을 하면서 삶을 여유롭게 관조하는 정신적인 수련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색채가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정서적이다. 또한 정형화되지 않고 특정한 규범에서 탈피한 조형언어를 생산했다. 결과물에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작가의 정신세계 혹은 삶의 포즈를 발견하게 된다.
김기양은 첫 개인전부터 세 번째 개인전까지 자신의 삶 가까운 곳에서 주제 및 표현대상을 선택했다. 자신의 거주지에 있는 호수공원이나 스스로의 삶을 대상으로 선택함으로써 삶과 작업을 분리시키지 않고 동일한 범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를 관람하는 이들은 작가의 내밀한 정신세계와 삶을 엿보게 될 것이다. 이지점에서 미학적인 가치를 성취하는 성과를 거뒀다. |